웃으면 손이 굳는다: 내 몸에 사는 흑마법사 '경직'

15화| 경직이라는 고집스러운 동반자와의 일상.

by 오립

내 생일날이었다.


2년 만에 재회한 소꿉친구들과 농담에 맞장구치며 웃고 있는데, 내 왼팔이 말려 올라갔다.

친구는 눈치채지 못한 건지, 못 본 척 해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짜증이 치밀어 그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장애를 얻을 때부터 내 곁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 같은 존재가 있다. '경직'이라는 녀석이다.

오늘은 이 녀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경직(spasticity, 강직이라고도 부른다.)은 신경 손상으로 근육이 스스로 긴장을 풀지 못해 뻣뻣해지는 상태다.

마비된 팔은 시체처럼 축 늘어지기만 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달랐다. 내가 팔 주인이 아니라 어떤 흑마법사가 내 사지를 따로 조종하는 것 같았다. 즉, 필요할 때는 작동하지 않다가 쓸데없을 때 반응하는 게 마비된 신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흑마법사가 부리는 술수를 사람들은 경직이라고 명명했다.


내가 이 계략에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다.


첫 번째 피해 사례.

평소처럼 재활 치료를 받던 어느 날이었다.

치료사 선생님과 스트레칭을 하며 일상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이 던진 농담이 너무 재미있어 웃었다.

그때, 스트레칭 중이던 손가락이 점점 빳빳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웃으면 스트레칭할 때 더 아파. 힘 빼야지."

"하하.... 안 빠져요.."


선생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펴주려 애쓰셨지만, 그럴수록 더욱 말려들어갔다.

조금 얌전해진 상태에 안심하며 다시 치료를 진행하려는데, 이번에는 이유 없이 왼손가락이 자기 정채성을 착각하는 건지 달팽이처럼 자기 집에 숨어들 듯 오그라들었다.


두 번째 피해 사례.

즐겁게 가족 외식을 마친 후 부모님과 함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저승과 악수라도 하고 싶었는지 쌍라이트를 켜고 달려왔다. 마치 이 골목이 레이싱 코스인 양 속력을 올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풍압에 놀라 발목이 굳으며 비틀거렸다.


부모님은 지나치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며 욕을 퍼부으시고 나를 살피셨다.

양쪽에 어머니, 아버지라는 든든한 성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흔들렸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제일 어리고 건강한 육체인데.

'종이 인간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그게 나 아닐까.' 생각이 극단으로 치달으니. 원망의 대상은 놀랐어도 아무렇지 않은 연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직이었다.


세 번째 피해 사례.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각자의 가면을 쓰며 살아간다.

불안해도 미소 짓고, 화가 나도 차분한 척하며, 기쁨조차 절제하며 연기를 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 가면 쓰기가 쉽지 않다.


내가 긴장하면 손이 굳어버리고, 불편하면 발목이 먼저 들킨다.

누군가는 상황에 맞춰 미소를 지으며 속마음을 감출 수 있지만, 내 몸은 그 미소를 믿어주지 않는다.

마치 내 안의 진짜 마음이 근육을 통해 심정을 토해내 듯, 숨기고 싶은 감정까지 드러나 버려 사람들 앞에서 더 작아지기도 한다.


이런 솔직함은 버겁다. 특히 누군가를 안심시키고 싶거나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순간에도 '선의의 거짓말 따위 알 게 뭐야!'라며 경직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억지로 숨기려 애써도, 몸은 이미 진실한 감정을 담고 있다.


이 빌어먹을 흑마술 때문에 원치 않은 진실된 자가 되어버렸다.

내 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는 경직이라는 녀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불편하다. 사람들 앞에서 손이 굳을 때 부끄럽고, 길 위에서 발목이 잠기는 순간, 바닥과 키스할까 두렵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 속, 원망 안에서도 장점은 존재한다. 이 겉으로 드러나는 솔직함 덕분에 내 몸 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강직이 전보다 심했을 상황에서 반응이 느렸다면 몸이 피곤해 신경이 둔해졌다는 경고다. 혹은 강직이 전보다 더 심해졌다면 운동을 너무 안 해서 근육이 굳어가고 있다는 구조 신호인 걸, 조금 성장하고 나니 배웠다.


이런 좋은 점을 별견하기 전까지 단점을 수용하는 단계를 거치고 경직을 인정하는 과정을 지나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험난한 길을 걸었다.


흑마법사를 없애면 참으로 쉬운 일이겠지만, 현실판 보스 레이드는 게임보다 더 하드 모드이기 때문에 합의를 보는 편이 낫다. 물론 계약 내용은 흑마법사에게 전적으로 유리하지만, 최소한 강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얻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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