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유부남: 재활병원에서 배운 사랑의 모양

13화| 재활병원 첫사랑 사건록

by 오립

이번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야흐로 재활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회복 기간이 어느 정도 끝나고, 재활의 황금기가 막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부모님의 식지 않는 '과거 모습 복원 프로젝트'에 한참 지친 나는, 치료사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며 마치 어느 백작가의 영애처럼 우아한 티파티를 열고 있던 시기였다. 그 시간이야말로 병원 생활 속에서 얻은 소소한 쉼표였다.


어느 날, 물리치료실에서 우연히 내 시선이 닿은 사람이 있었다. 옆자리에서 다른 남자아이를 치료하고 계시던 선생님, 단단한 체격에 안경 너머로 중후한 인상을 풍기던 팀장님이었다.


그 순간, 그가 건네준 짧은 미소. 그 웃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너무 뚫어지게 바라봐서 그러신 건가, 그의 모습이 심장 깊이 각인되었다. 살아생전 처음 겪는 '사랑'이었다. 그날 병실에 올라가서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위성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그 얼굴이 내 심장을 괴롭혔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처음 느껴 어색한 이 감정을 서슴없이 어머니께 털어놓았다.


"그 선생님이 너무 잘생겼어. 보면 심장이 막 두근거려!"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웃으셨지만 난 진지했다. 그때는 연인과 결혼이란 개념을 몰랐지만, 가족을 뛰어넘는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 마음을 선생님께 전하지 않으면 내가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평소 부모님 생신 때나 억지로 쓰던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어가며 내 입술에는 웃음이 번졌고, 손끝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종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도 그제야 "너 진심이구나?"라며 놀라셨으니까.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겼고, 앞뒤로 빼곡히 채운 네 장의 편지가 내 손에 고이 접혔다. 지우개로 지워버릴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봉투에 봉인했다. 내 편지를 보시면 어떤 표정을 지어주실까라는 그 설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다음 날, 그 편지는 점심시간에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전달되었다. 왼손은 주인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몸에 바싹 붙어있었다. 이때만이라도 좀 얌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경직이 이리 원망스러울 줄이야. 하지만 말머리부터 떨리는 목소리가 이미 모든 걸 다 드러내고 있었으니, 따로 미워할 필요도 없었다.


"팀장님 생각하면서 밤새 썼어요."

"이걸 나한테...? 왜?"

"어... 좋아서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팀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하하, 고마워. 잘 읽을게."


팀장님의 첫 반응은 다소 떨떠름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치료실 내에서 아이들 사이에 불리는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이었으니까. 아이에게 호감의 시선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이 말을 끝으로 편지를 다른 분들에게 자랑하며 "내 인생에 이런 날도 오는구나"라며 상당히 기뻐하셨다. 한 오빠가 "자기도 편지 준 적 있지 않냐"며 반응 차이가 크다고 따져 묻자, "너랑 같냐"며 농담도 건네셨다. 그 모습이 상당히 뿌듯해 절로 웃음이 지어졌고,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들키지 않으려 자리를 피했다.


이 편지 사건 이후, 조금 많은 것이 변했다. 치료해 주시는 선생님이 팀장님으로 바뀐 것이다. 시간표를 본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부여잡고 첫날 설렘 속에 치료실로 향했다. 팀장님은 아이들에게는 무서움의 대상, 보호자들에게는 '금손'이라 불리는 정말 '치료'만 하시던 선생님이었음에도, 내게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시간을 만끽했다. 티파티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나를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서 매일 그와의 시간만 기다렸다.


얼마 후,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나를 부르더니 내 이름과 선생님의 이니셜이 새겨진 반지를 건네주셨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보답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흔하지 않은가. 학생이 선생을 짝사랑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첫사랑 이야기. 난 그런 이야기가 될 줄 알았다. 그저 한 어린 소녀의 마음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기며 막을 내리는 드라마가 될 줄 알았는데. 커플링 반지라니, 심지어 금반지.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내 분이 허락하셨나?'였고, 그다음은 '아이들에게도 잘해주시는 거겠지?'였다. 죄송하지만 그분은 기혼자에 아이가 둘 있었다. 그때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비싼 게 금이라고 알고 있던 터라 무서웠다. '나 머리채 잡히는 거 아니겠지?' 아침 드라마가 한 아이의 상상력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뭐, 결론만 말하자면 감사히 받아서 아직까지 잘 소장하고 있다.

한참 친밀도가 올라갔을 때 선생님이 내기를 하나 제안했다.


"네가 한 발 서기 10초 버티면 롯데월드 데이트 가자."


그때의 나는 왼발이 어느 정도 회복 단계에 있었고, 한 발로 지탱이 가능한 수준까지 와 있었다. 이 지속시간이 5초가 최대였는데, 이를 늘리기 위한 묘수를 두신 것이었다. 아마 목표의식을 갖게 하려는 그 나름의 전략이었다. 이 달콤한 제안을 들은 후 어디서 나온 슈퍼파워인지,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성공했다. 12초, 초과달성을 하고 정말로 롯데월드에 갔다. 당연히 단 둘이 갈 계획이었으나...


"너랑 단둘이 가면 나 아버지한테 죽어."

"부모님이 그냥 제가 없는 시간이 생긴다고 좋아하시던데요."

"안 돼... 그건 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거야."

"알겠어요,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가죠!"


그렇게 여자 작업치료사 선생님 두 분과 팀장님, 나 이렇게 넷이 동행하게 되었다. 평일, 롯데월드. 어렸을 때라 몰랐는데 평일 월차까지 쓰면서 나와 시간을 보내려 나와주신 것이었다. 장애가 생기고 처음 가는 놀이공원에 부모님 없이 치료사 선생님과 첫사랑이라니! 뛸 듯이 기뻐서 정말 뛰었다. 난간을 잡고 점프하니 팀장님이 "너, 복지 카드 낼 때 그렇게 뛰면 눈치 보여..."라며 속삭이셨다.

놀이공원에서는 복지 카드를 사용하면 줄을 설 필요 없이 장애인 동반 1인과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데, '열기구' 타기 전 직원에게 복지 카드를 내어주며 나온 말이었다. 아마 날 조용히 시키고 싶으셨나 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진 놀이기구 타기 열정은 계속되었고, '데이트'라는 주제도 까먹으며 그 시간을 온전히 아이처럼 만끽했다.


데이트 후 팀장님은 주변 다른 남자 선생님들에게 견제를 받았다. 이유는 내가 본인들에게는 관심이 없다시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내 눈에는 내 사랑만 보이는데. 선생님들끼리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었다. 참 화목한 치료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특히 팀장님이 즐기셨는데, 내가 오기 전까지 쌓인 게 많으셨나 보다 하고 넘겼다. 그중에 키 크고 인기 많은 선생님이 "자기는 왜 안 좋아하냐"라고 물어보시길래, "내 스타일 아니다"라며 딱 잘라 거절한 기억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 정말 연예인 뺨치게 잘생기긴 했었는데. 뭐, 애인 있으셨으니 잘 지내시겠지.


이후 팀장님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좋아했던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듯한 사람. 그가 내 인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이자 과거의 아름다움으로 남은 '한 남자'였다.


그가 내게 해준 선물들은 삶을 살며 힘들거나 지칠 때, 혹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촉발제 역할을 한다. 그는 과거의 나와 현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아픈 과거 속 하나의 빛이었으니까. 어두운 지하터널에 작은 빛줄기 하나가 길을 걸어가며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아픈 과거를 들추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절망 속 희망'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희망의 존재를 가르쳐 준 당신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헤어지기 전 약속했던 "너 나랑 달리기 해서 이기면 같이 일본 여행 가자!"라는 말 꼭 기억하고 계세요.

만나자마자 인사하기 전 '준비 땅!' 외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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