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병원에서 만난 치료사와 겨울 날의 작은 희망
천장과 간판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였다. 감옥의 벽이 허물어져도 새로운 감옥이 세워질 뿐, 죄수는 여전히 죄수로 남아있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올려다본 하얀 천장도, 창문 너머 깜빡이는 네온사인도, 결국 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좌절감과 다르지 않았다. 세상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채 스스로를 유배시키던 그 무렵,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빗장을 두드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깊은 상흔을 남긴 이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치료사'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선의마저 밀어냈다. 내 둘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높은 장벽을 쌓았다. 그런데 그들은 달랐다. 내가 그어놓은 무형의 금지선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정해진 치료 시간을 넘어서, 부모님 이외에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삼의 통로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부모님과의 갈등을 넋두리처럼 쏟아냈고, 그들은 진심이 담긴 이야기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상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였다. 그들의 가치관과 나의 세계관이 부딪히고 융합되며, 때로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내기도 했다. 깊이 있는 대화가 이토록 즐거운 것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마음의 문을 열어볼 걸 하는 후회마저 스며들었다.
그들은 내 육체뿐만 아니라 내 정신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작은 씨앗을 뿌려주었다. 강압적인 격려가 아닌, '가능성'이라는 빛줄기를 비춰줌으로써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내가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절묘한 균형을 잡아주었다.
"선생님, 저도 예전처럼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글쎄, 네가 노력하기 나름이지.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혹시 몰라, 네가 올림픽 선수가 될지 누가 아니?"
"쌤,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예뻐서?"
"에이, 그게 뭐예요, 히히."
"저… 운동하기 싫은데…"
"몸이 굳어버리지 않으려면 꾸준히 해야지. 너처럼 회복 가능성이 높은 아이는 드물어. 이런 복 받은 몸을 그냥 방치할 거니?"
자존감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하던 시절, 나는 인간관계의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사람에 의해 상처받은 영혼은 사람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말이다.
그 병원에서 보낸 겨울은 유독 찬란했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정원을 포근히 감쌀 때면,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비록 투명한 유리라는 투명한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복도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따스한 조명의 온화한 분위기는 뜨거운 코코아를 홀짝이며 설경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형형색색 반짝이는 트리를 바라보며, 더 이상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산타에게 오래도록 품어온 간절한 소원을 속삭였다.
'장애가 사라지게 해 주세요.'
그해에 너무 많이 울어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분위기에 취해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이었다.
응답받지 못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평범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내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다. 나는 그들의 근황을 듣기 위해 치료실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가족들과 무슨 음식을 나눠 먹었을까? 아이들에게는 어떤 선물을 안겨주었을까?' 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질투심은 아니었다. 나 역시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으니까. 나는 그곳에서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며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그 감정, 절망 속에서 솟아난 것이 아닌, 일상에서 피어난 이 벅찬 느낌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감정이라 더욱 아쉬워서, 한 번 더 경험하고 싶다는 갈망에 휩싸였다.
그렇게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사소하지만 위대한 행복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