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끝난 이의 커튼콜

10화| 장애가 남긴 상처와 후회

by 오립

여전히 진행 중인 장애가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는 몸뚱이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철새처럼 병원을 옮겨 다녀야 할 처지라는 것 또한. 어렴풋이 알았다.

모두 부모님의 욕심이었다. 조금이라도 예전처럼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희망, '내 딸은 남들과 달리 훌훌 털고 일어날 거야'라는 어른들의 막연한 믿음과 자만이 어린 나를 점차 지치게 만들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간은 고작 한 달,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항상월보다 조금 덜 되는 덧없는 시간이었다.


다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 보도록 하자. 첫 병원과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나는 두 번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잔뜩 성이 났었지만, 새 병원의 낯선 풍경이 주는 불안감 속에 나름 전 병원보다 신식이라 마음에 든다며 인테리어를 탐색하며 감정을 억눌렀던 것 같다. 입원 절차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활 치료실에 던져지듯 이끌려 갔다. 그곳은 사방이 뚫린 공간이었다. 쇠와 소독약 냄새가 섞인 알 수 없는 공기 속, 날 맞이한 건 나이가 지긋하게 먹으신 팀장님이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그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운동에 열중했다. '마비된 왼 다리 한 발로 서서 무릎 굽혔다 펴기'. 이 운동을 잘 기억해 주길 바란다. 이 사소함 하나가 날 지옥으로 빠트렸으니까.

물리치료 시간 3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왼 다리를 얼마나 많이 쓴 건지 마비된 근육들이 끊임없이 떨렸고, 무릎 관절에서는 찌릿한 경고음이 울렸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작업치료실로 가게 된 나는 이런저런 인지 검사와 언어 검사 등을 받게 되었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하던 놀이와 비슷했으니까. 검사 후 남은 빈 시간 동안 약간의 마사지를 받은 후,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악몽 같은 일이 터졌다.

왼 다리에 힘이 풀려 맥없이 넘어지고 만 것이었다. 몸은 왼쪽으로 고꾸라지며 왼손을 깔아뭉갰고, 손목에 강한 통증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둘러싼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왜 나를 잡아주지 않았나. 치료사 선생님은 사용했던 도구를 정리한다고 뒤돌아 있었고, 어머니는 나를 세워둔 채 신발을 꺼내 오신다며 신발장에 계셨다. 아무도 그 순간의 나를 보지 못했다.

홀로 넘어져야만 하는, 나의 외로운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국 왼 손목에 금이 가 통깁스를 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 관절까지 다 나가버려, 이때 이후로 무릎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나빠질 곳도 없을 것 같은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두 번째 병원 입원 기간은 두 달. 그중 깁스를 한 기간이 무려 한 달이었다. 퇴원할 때 내 왼손은 원상복구가 되어있었다. 완벽히 굳은 상태. 손목은 올라가지도 않았고, 손가락은 펴지지도 않았다. 보통 중도 마비 환자들이 마비 전의 감각을 찾고 기능을 회복하는 데 걸리는 '황금 기간'이 2년이라고 했다. 나는 그 황금 같은 시간 중 한 달을 그저 바닥에 버려두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그 말도 한계가 있지. 말 꺼낸 지 얼마 됐다고 다시 처음부터냐고. 나는 속으로 삼켰다.

이 일을 시작으로 부모님의 재활 집착은 심해지셨다. 병원에서 하는 치료 이외의 재활을 병행하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밥 먹고 계단 오르기, 병동 걷기 등 귀찮은 일을 잔소리와 섞어 진행하시니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반항심만이 채워질 뿐이었다. 내가 하기 싫어할 때면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지금 안 하면 커서 후회한다.", "다 커서 낫기 위해 시도해도 그때 가면 늦어."

응원을 해줘야 그나마 할 맛이라도 날 텐데, 두 분은 나의 의욕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말씀은 통했다. '후회'라는 감정이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어린 나이에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친구들하고 더 뛰어놀 걸.

두 발 자전거 더 탈 걸.

태권도 보내달라고 더 때 쓸 걸.

인라인스케이트 몰래 타 볼 걸.

이제는 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아서 아쉬움이 컸다. 부모님이 하지 못하게 했던 활동적인 놀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젠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후회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회한이라는 건 절대 채워지지 않을 공백이다.

내 평생을 살아도 메울 수 없는 마음의 빈칸은 애써 무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기에.

오답이라도 빈칸으로 두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수면 위에서 점점 수명을 다해가는 잉어처럼, 생기를 잃어버리기 전 숨 쉴 구멍이 생겼으면 좋겠다.

살려달라 외칠 수 없는 무대 위의 오페라 가수는 몸짓으로 커튼콜을 마친다.

그렇게 조명이 꺼지고, 한때 빛나던 희망의 무대는 영원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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