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장애가 가르쳐 준 냉정한 진실
가늠할 수 없는 내면이 격동할 때 만났던 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차 수술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재활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오니 비어있던 옆 베드가 생필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새 환자가 들어온 날이었다.
첫 만남은 보호자였다. 그는 음료를 병실 내에 돌리며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전했다. 인사성이 참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검사를 받고 올라온 환자를 보았다. 오지랖 높은 간병인과의 대화를 떠올린 나는 신혼부부가 선남선녀라고 생각하였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였는가. 그녀 또한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갑자기 아내가 어지럽다고 하길래 병원에 왔더니 경미한 뇌출혈 발생이었단다.
'경미한'...
그녀는 4인실에 누워있는 환자들 중 가장 멀쩡해 보였다. 나와는 다르게 혼자 걷고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다. 시샘하고 있는 중일지도. 그래서 일부러 그들의 물음에 성의 없이 대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옛말에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잘난 옛 선조들이 옳았다. 난 이틀도 못 가서 그들과의 대화 시간이 병실에서 하는 게임 이외의 낙이 되었다.
삼일째 되는 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증세가 빨리 호전되어 퇴원을 한다는 거 아닌가.
그날 난 울었다. 그들이 떠나는 게 아쉬워서? 아니, 그들이 나보다 먼저 퇴원하는 게 분해서. 입술을 깨물어도 억울함이 가시지 않는, 뜨거운 분노였다.
난 아직 실밥도 다 못 풀었는데 그들은 멀쩡한 상태로 병원을 나가잖아. 내 몸은 아직 나아질 기미조차 없는데 그들은 벌써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자 퇴원 선물."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건네어 받은 건 곰인형이었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 옷을 입은 예쁜 아기 곰이었다. 어린이 집에서 배운 동요의 주인공이 얘다 싶을 정도로 똑같이 생긴 친구였다. 보통 퇴원 선물은 퇴원하는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건데 오히려 내가 받아버렸다. 무서운 사람들 아이를 이렇게 쉽게 다룰 줄 알다니. 아이를 좋아한다고 들었지만 잘 다루는 건 다른 영역인데. 그 작고 보드라운 털 뭉치를 받아 든 순간, 마음에 가득 차 있던 뾰족한 질투는 스르르 녹아내렸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질투라는 감정이 씻겨 내려가 있었다. 그렇게 작별을 마쳤다.
나도 그들처럼 곧 예전처럼 멀쩡히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일주일 후, 바로 옆 병동에 새로운 환자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솔직히 말해서 입퇴원 환자는 같은 병실에 있는 인원만 알면 된다. 다른 병동까지 신경 쓰기에는 이곳에 오가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으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구태여 옆 병동의 소식을 가지고 오셨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신혼부부가 다시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마지막까지도 좋은 인상으로 기억돼서 그런지 인사하러 가자며 나를 끌고 가셨다. 어머니께 가시겠냐 여쭈어보니 '병원에 입원하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집들이 마냥 찾아가'라며 거절하신 후였다.
다시 만난 그들은 그전에 내가 알던 부부가 아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의 인사말에 돌아온 건 펭귄도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눈빛과 '예.' 한마디였다.
... 오가는 말 없이 2초. 병실을 감도는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는 그들의 눈빛이 담고 있는 고통과 절망을 읽어냈다. "더 할 말 없으시죠." 매정하게 커튼을 치는 보호자의 손짓에 우리 부녀의 인사마저 가로막혔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어쩔 줄 몰라 주춤거렸고, 굳은 아버지의 표정은 병실 문을 나설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이렇게 일주일 만에 재회한 그들의 모습은 180도 바뀌어있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궁금하지 않은 그들의 뒷 이야기는 아버지가 가끔 의구심에 상기하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대충 예상은 간다. 경미한 줄 알았던 뇌출혈이 퇴원 후 다시 재발, 2차 출혈에 후유증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힘들 때, 아버지와 나를 봐서 웃으며 맞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흔히 봐 온 케이스 중 하나여서 모를 수가 없는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때가 그리 섭섭하셨는지 가끔 이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꺼내오신다.
이때 배웠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나보다 경미했던 사람이 재발로 더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될 줄 그것도 2주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말이다. 외부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일상'을 보내다가 그리 될 줄 알았던가.
중도 장애인에게 '왜 장애를 얻게 되었어요?'라 질문을 해봐라, 대부분 '일상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자기'가 늘 서두에서 시작될 것이다. 나도 그랬고, 내가 스쳐 온 대부분의 인연들이 그랬다.
장애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몸 안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질병이라 해도 옳다.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닌 정말 팩트를 말하는 거다. 어차피 발병 시기가 다를 뿐인 거니까.
'난 빌어먹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찍 발병되었고 비슷한 또래보다 조금 벅찬 인생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 버거운 짐을 견뎌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고, 때로는 불공평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할 숙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