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고통 속 위로의 무게
저미는 시간 속을 몸부림치다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단 일주일. 중환자실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었으나, 마치 한 달, 아니 몇 년의 세월을 겪어낸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실이 어떠하든 어린 내게는 상관없었다. 일반 병실에서 부모님과 하루 종일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만으로 세상은 다시 따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간호사 선생님들과 다음을 기약하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몸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수많은 줄들을 떼어냈다. 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 작은 해방감만으로도 숨통이 확 트이는 듯했다.
새로 도착한 곳은 아늑한 1인실이었다. 낯설고 두렵기만 했던 중환자실을 벗어나, 옆에 늘 보호자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병원에서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자극적인 맛'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박한 기쁨이, 내가 다시 살아났음을 강렬하게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몸을 씻어내는 목욕이었다. 물줄기가 온몸을 감쌀 때의 그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이제 이 작은 행복감만 즐기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부모님은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나는 다양한 검사실로 보내지고, 다시 병실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평온했던 마음에 불길한 불안감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엄마… 나 또 수술받아…?"
그때는 몰랐다. 머리 위, 봉합되지 못한 두개골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내 불안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엄마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말을 꺼려 하셨다. 그냥 솔직히 알려주면 편할 것을. 그래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텐데.
"...응, 뼈를 다시 덮어야 돼."
수술 전에 분명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내일'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지 않은가. 엄마의 말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와 내일 점심이 수술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 시동을 거는 참이었다.
"울면 안 돼, 또 뇌압 높아져서 뇌에 출혈 일어나."
세상에서 가장 웃프고, 기묘한 위로였다. 보통 이 나이 또래라면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신대' 같은 말을 들을 텐데.
그날 저녁, 아침에 수술 소식을 전했던 레지던트 선생님이 나를 처치실로 데리고 갔다. 12시간의 길었던 첫 수술로 생긴 욕창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선생님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바로 이발기였다. 전기가 흐르는 날이 마찰하는 소리가 층 전체에 울려 퍼지고, 내 왼쪽 귀 위로 채 아물지 못해 피딱지가 앉은 욕창과 함께 살점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자지러지게 우는 내 머리를 두 손으로 안고 차마 보지 못하시겠는지 고개를 돌리셨다. 지금 그 장면을 떠올려도 그때의 고통까지 생생하게 전해지진 않는다. 모든 것이 끝나고 밀려왔던 건 욱신함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날 처음 마주한 이발기는 내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현재도 전기 마찰음 소리만 들어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위축되어 버리곤 한다.
세월이 흘러 아빠의 그때 감상이 궁금해 질문드렸던 적이 있었다. 아빠의 첫마디는 나를 울렸던 그 선생님을 지칭하는 건 '그 새끼'였다.
"그 여린 살을 파이게 했어." 술 한 모금을 적시는 아빠의 모습은 유독 무거워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 "그래도 아빠가 누군데. 한바탕 했지." 아빠가 지으시는 짓궂은 미소. 하지만 어쩐지 눈빛이 흔들려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더 캐묻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아팠고, 아빠는 오직 나만을 위한 단단한 방패였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날 2차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움푹 꺼져 있던 내 오른쪽 머리는 다시 본래의 상태를 되찾았다. 이때 또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줄 알았지만, 다행히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4인실. 처음으로 다른 환자들을 마주하게 된 날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벤트는 아버지가 머리카락을 전부 밀고 나타난 것이었다.
"짜잔!" 하고 모자를 벗으며 보여주는 아빠의 모습에 내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차올랐다. 아니, 머리숱도 없으신 분이 그 귀한 머리카락을 밀다니. 한 올 한 올 소중히 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 아깝잖아요! 처음 그 모습을 보고 든 솔직한 감상이었다.
"아빠 왜 빡빡이 됐어?"
"우리 딸이랑 똑같네." 옆에 서 계시던 엄마가 몸을 돌려 눈물을 훔치셨다. 내게 티 내지 않으려 하셨지만, 그 마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 어른들의 깊은 감정선을 다 따라갈 수 없어서, 그저 아빠에게 안겨 밤톨처럼 까끌까끌한 머리를 만져보았다. 나는 '내 머리도 이런가?', '처음 해보는 헤어스타일이네', '스님 부녀 같겠다' 같은 별생각 없었으나, 엄마의 감상은 달랐다. '왜 나만 혼자 머리카락이 없어?'라며 슬퍼할까 봐 아빠가 직접 머리를 깎았다는 이유를 듣고, 엄마는 이다지도 섬세한 사람이었나며 크게 감동받으셨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그 이발기. 그 기계음이 주는 공포는 어린 내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아빠의 깎인 머리카락을 마주하며, 나는 이발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로소 가족 간의 깊고도 섬세한 애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빠의 민머리가 내게 전한 것은 단순한 동질감이 아니라, 말없이 전해진 무조건적인 사랑과 위로였다. 이처럼 모순적인 감정을 지닌 매개체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물건은 죄가 없다는 것을. 물건 자체에는 어떤 악의도 없었다. 다만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특정한 상황과 감정이 그 물건에 투사되었을 뿐이었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기 시작했다. 물건들로 하여금 새로운 추억들을 다시 새겨 넣는다면, 때로 그리움이나 고통이 상기되더라도 다른 감정들이 그 공허함을 채워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겼다. 물론 과거가 죽을 만큼 자신을 괴롭게 한다면, 외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건 하나 거부감 든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오진 않을 테니. 하지만, 새로운 기억으로 덮어씌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물건에 대한 공포심이 조금은 해소되고, 그 해소되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물건은 죄가 없다. 내 과거가 나를 괴롭힐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좋은 추억으로 그 위에 사랑을 덧씌우면, 과거의 고통은 희미해지고 사랑으로 중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