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상처와 회복의 균열
힘든 시간은 모두 지나갔으리라, 나는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할머니가 병문안을 오실 때마다 나지막이 읊조리시던 "내 새끼 큰 산 넘었네."라는 말처럼,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싶었다. 두 번의 대수술. 이토록 큰 산을 넘었으면, 이제는 좀 쉬어가게 해줄 법도 한데. 아, 태백산을 힘겹게 넘어서고 나니, 저 멀리 나를 기다리던 것은 웅장한 에베레스트산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반복되는 상처 소독은 불쾌함 그 자체였다. 연붉은 핏빛의 소독약에 절인 솜이 수술 부위와 욕창으로 생긴 딱지 주위를 치덕치덕 훑을 때마다 느껴지는 말랑하고 축축한 감촉,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알코올 냄새는 역겹기까지 했다. 하지만 2차 감염 예방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임을 알기에, 나는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다. 소독이 주는 거북함도 끝이 있었지만, 그 모든 불쾌함에 앞서 가장 큰 고비는 다름 아닌 실밥 제거 과정이었다.
그때 나는 이발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이 박혀있던 터라, 의료용 가위나 집게가 머리 위로 올라올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덕분에 간호사 선생님들은 몇 번이고 포기하고 돌아섰고, 우리는 모두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실밥을 오래 제거하지 못하면 피부와 실이 일체화되어 나중에 풀 때 더 고통스럽다는 아버지의 엄포에, 나는 마지못해 안 아프게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실밥 제거를 수락했다. 기이하게도, 실을 푸는 부위마다 고통의 세기가 달랐다. 미치도록 아픈 곳이 있는가 하면, 풀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이 극심한 감각의 간극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닷새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나는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재활 치료실은 낯선 물건들로 가득했다. 팔 훈련 기구, 코끼리 모양의 도구, 알록달록한 컵들. 헬스장보다도 특이하고 다채로운 '장난감'들이었다. 처음엔 호기심에 모두 사용해보고 싶었지만, 이내 나는 이 물건들의 쓰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던 왼손, 마비된 팔을 보다 잘 활용하기 위한 연습 도구들이었다.
작업치료사 선생님은 "손을 펴 보세요"라고 반복해서 지시했지만, 인식조차 못하는 팔에 힘을 주어 손을 펴려 할수록 내 얼굴만 새빨개질 뿐, 내가 상상하는 손의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멀쩡한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이토록 수월한 동작인데… 10번 넘게 같은 지시를 내리는 선생님을 보며 울화가 치밀었다. ‘보면 몰라? 안 움직이잖아.’
나는 분명 힘을 주고 있는데, 팔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어느새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현실을 인지한 걸까. 중환자실에서 어머니가 했던 말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이제 왼손 안 움직일 텐데….' 나는 남몰래 중얼거렸다. "안 괜찮아." 당황한 작업치료사 선생님은 어머니를 불렀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나는 뜻밖에도 금방 진정되었다. 인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현실을 외면한 순간이었을 뿐.
이어 물리치료 시간이 찾아왔다.
"일어나 볼까?"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왼다리는 시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속은 산산이 문드러지고 있었다. '엄마 앞에선 울지 말아야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최소한. 다리만은 뺏지 말아주지. 분명 처음엔 안 이랬잖아.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잖아. 왜. 대체 왜.' 결국 나는 왼다리마저 잃었다. 그때 1차 병원 의사 선생님께 모든 것을 털어놓았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주변 어른들은 말했다. 재활을 열심히 받으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믿었고, 열심히 노력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작업 치료도 몇 번 받다 보니 비록 버겁긴 했지만 손가락을 모두 편 상태로 손목을 올릴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되었다. 절망을 배웠고,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얻었다. 앞으로 이 소녀에게 희망찬 내일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과거를 겪은 지금, 나는 어르신들이 말했던 '원래대로'가 무엇을 뜻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것은 '비장애인'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상적인 움직임'을 말하는 것일까? 혹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음'을 뜻하는 것일까?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문이다.
힘들 때마다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예의상 건네는 말을 뭐 그렇게까지 신경 쓰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말에 힘입어 재활을 결심하게 되었으니 그리 쉬이 넘길 말이 아니다. 수많은 위로와 도움이 있었고, 그 사이 스쳐 지나간 한 문장에 불과했을지라도, 내겐 현실을 인지했을 때의 절망감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수많은 문구 중 하나였으니까.
'그럼 지금도 그 말에 힘이 돼?'
글쎄, 그건 아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배웠을 때, 그 말의 효력은 끝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길잡이였던 전등이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니니, 나는 여전히 이 질문을 붙잡고 고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