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상의 절망 속, 소망과 마주한 나의 이야기
어릴 적 내게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다.
사촌 오빠가 집에 올 때마다 들고 와서는 자랑스레 건네던 작은 기계. 닌텐도 DS였다.
한창 <동물의 숲>과 <마리오 카트>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사로잡던 때였지만, 부모님은 도무지 나의 오랜 열망을 들어주실 생각이 없으셨다.
무엇이 그리도 우려스러우셨는지, 한 살 터울 오빠가 가진 게임기에도 몇 개월을 매달려도 단호하셨다.
하지만 삶은 가끔, 뜻밖의 아이러니가 우리를 찾아온다. 내가 차가운 병상에 눕게 되자,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닌텐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는? 원하는 거 다 말해, 다 해줄게."
진통제와 수면제에 절어 멀쩡한 정신이 아니었음에도, 인간은 본인의 욕망에 충실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닌텐도 DS요! 피자랑 딸기도 먹고 싶어."
내 얘기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신 어머니가 사 오겠다 하셨다.
아픔조차 잊은 채, 곧 손에 쥘 게임기와 입 안 가득 채울 음식들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나는 약효에 못 이겨 스르르 잠에 들었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의 나의 하루는 온통 잠과 잠 사이의 표류였다.
수면과 기상을 반복하며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모롱한 정신 속을 허우적대야 했다.
폐렴으로 인해 열이 끊이지 않아 쿨매트를 깔아두었지만, 그 싸늘함은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발이 시려 잠에서 깨어나도, 발아래 멀찍이 떨어진 이불을 발가락으로 붙잡기 위해 애써도 역부족이었다.
이불을 미처 붙잡기도 전에 다시 잠에 빠져들며, 설산에 맨몸으로 오르는 꿈을 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한창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병원 에어컨은 끊임없이 작동되어, 열을 내리기 위한 조치라지만 너무 고되었다.
중환자실에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수술 후 첫날이었을 것이다.
몸 상태를 제대로 파악도 채 하지 못한 채 추위에 온몸을 떨어야 했던 그날 밤.
어렸을 때라 몰라서 망정이지, 지금의 나라면 아마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정
신은 멀쩡한데 두 손은 포박되어 이불 한 장 덮어 달라 말 한마디 못 하는 그 절망적인 상황을 어찌 견뎠을까. 내가 살아있는 건 맞나 의심될 정도로 정신은 혼미했고, 주변은 시끄러운 기계음으로 가득했지만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보고 싶은 사람은 부모님이었지만, 하루에 40분밖에 허락되지 않는 면회는 그 어떤 위안도 될 수 없었다.
23시간 20분 동안 말 걸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수면제 때문에 면회 시간을 놓치면, 부모님이 남겨주신 물건만이 텅 빈 내 자리를 위로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게 9월의 산타가 찾아왔다.
품에 안겨진 게임기와 먹고 싶다던 음식들이 가득했다.
사실 수술 직후라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게임을 할 체력도 안 되었지만, 시각이 주는 풍성한 기쁨만으로도 충분했다. 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듯 딸기는 못 구하셨다고 했다. 9월은 딸기 철이 아니어서 병원 근처 백화점, 마트 전부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대신 차선책으로 딸기 주스를 갈아 오셔서 몇 숟가락 겨우 떠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혹시라도 컨디션이 괜찮을 때 게임기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간호사님께 조치 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중환자실에 최초로 피자를 사 들고 온 보호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는 이야기는,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게 했다.
난 이런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는 문을 향해 빌었다. '내일은 걸어서 이 문을 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내가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던 그 중환자실 문은 사람들이 들어만 올 뿐 나가는 이가 없었다.
부디 내가 최초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이 작은 소원마저 더 이상 빌지 않게 된 사건이 찾아왔다.
내가 부모님과 조우하기 몇십 분 전, 으레 알람처럼 들려오던 석션 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 소리가 굉장히 크고 괴상하게 들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왼쪽 병상, 할머니께서 가래 빼는 치료를 받고 계셨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다.
'나도 저거 받아야 하나...?' 하지만 꾸준히 그 시간에 울리는 소리와 규칙적인 소음은 어느새 공포의 감정을 밀어내고 알람처럼 익숙해졌다.
'곧 엄마가 오시겠네.' 같은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석션의 횟수가 점차 늘어나고, 소리도 더 커지며, 지속 시간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무지한 나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힘들어하고 계신다는 것쯤은.
내 상황도 여의치 않은지라 직접 가서 마음을 전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할머니, 힘내세요! 저도 힘낼게요! 같이 여기서 나가요!"
다음 날, 주변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이때쯤이면 기계 소음이 들려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눈을 떠 왼쪽 병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어? 건강해지셔서 집에 가셨나?'
나는 잠시 헛된 꿈을 꾸었다. 나도 다음 날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면회 시간이 되어 그 할머니를 보러 오던 가족들이 오셨다.
문이 열리고, 그분들이 단체로 오열하며 중환자실을 걸어 나간다.
늘 그 할머니 보호자분들 뒤에 부모님이 따라 들어오셨는데, 오늘은 부모님이 오지 않으신다.
'내가 시간 계산을 잘못한 걸까.'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나와 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다는 점, 보호자분이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오열하며 '살려내라'고 외쳤다는 점에서 추려낼 수 있는 명확한 정답이었다.
처음으로, 죽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건 이후, 문을 보며 낫게 해 달라 비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죽으면 남겨진 부모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그 무게를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헤아리게 된 것이다.
내 아픔을 온전히 깨닫기도 전, 부모님의 힘듦을 먼저 깨달아버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