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이 제일 아플 때가 있다.

17화| 그들의 위로는 내게 상처였다.

by 오립

학교를 떠난 뒤, 나는 다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얀 천장은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광등의 미세한 진동이 눈꺼풀 위로 내려앉으면, 나는 그 불빛 속에서 나 자신을 숨기려 했다.

어머니는 내게 물었던가. 괜찮냐고.

아마 물어봤을 것이다. 어머니니까.

그 한마디는 가볍게 들을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내게 의미가 깊어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어서.

몸보다 먼저 굳어버린 건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추억보다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는 대개 손끝이 아니라 입 끝에서 시작된다.

장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시선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린 나이인데도 대단하다."

"어린데 안타깝다."

"괜찮니"


하지만 그 말속에는 '넌 다르다'는 문장이 숨어 있었다.

그들의 호의는 칭찬처럼 포장된 연민이었고, 위로처럼 들리던 말은 사실 거리감의 표현이었다.


사람들은 악의 없이 상처를 준다.

'도와줄까?'라는 말 뒤에 '넌 혼자 못 하잖아'가 숨어 있고,

'그래도 잘 버텼네'라는 말속에는 '그런 몸으로'가 들어 있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그들의 위로는 나를 낯설게 만들었다.

나를 돕는 손길이 고맙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돕힘의 대상'으로 고정되는 순간마다 마음 어딘가 서늘해졌다.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버리는 내가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위로는 숨바꼭질과 같아서, 술래인 내가 찾지 않으면 게임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은 내게 신호탄이었다.

모든 감정을 덮어버리는 흰 천처럼, 나를 지키는 동시에 나를 가두는 말.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늘 괜찮다고, 괜찮아졌다고,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승부욕이 심해서 그저 습관처럼.

"괜찮아요."


그 말은 언제니 공기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벼움이 나를 짓눌렀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할수록 더 외로워졌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니, 나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내뱉던 그 단어가 결국 더 깊이 가라앉혔다.

'괜찮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의 예의처럼 굳어버렸을 때, 나는 진심을 숨기며 살게 되었다.

그건 다시, 나를 다르게 만드는 또 하나의 굴레였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그저 버틸만하다는 것, 견딜 수 있다는 것,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짜 괜찮은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조차도.


난 이 감정을 불신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세상에 대한 불신이었다. 사람의 말은 언제나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고, 그 포장지를 벗겨보면 공허가 들어 있었다. 누군가의 '괜찮니'가 진심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안도감을 위한 의례적 질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모든 말에 의심을 품게 됐다.

그 말의 뒷면에는 어떤 표정이 있을까, 그 표정의 그림자에는 어떤 시선이 숨어 있을까. 눈앞의 따듯함조차 믿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그 불신의 뿌리는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었다.

사람을 믿지 못했던 게 아니라,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믿을 영기가 없었던 것이다.

상처는 내가 만든 벽의 모양과 닮았다. 누가 다가오면 그 벽은 자동으로 커지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도 견고해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들을 미워한 게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건넨 "괜찮다"는 말이 결국 내 입을 통해 되돌아왔을 뿐이라는 걸. 그 불신은 방어였고, 그 방어는 상처의 잔재였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듣는다.

그들의 위로가 완벽한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내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는 뜻임도 안다.

말이란 건 늘 불완전한 다리다.

그 다리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건너오려 애쓴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불신과 함께 살아간다. 예전처럼 그것이 나를 갉아먹을 수 없게 신뢰라는 희망을 품고서.

이제 불신은 경계가 아닌 감각이다. 사람의 말과 표정을 구별해 내는 감각, 거짓과 진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나만의 기술.

사람의 이해는 공부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조금씩 사람 사이의 온도를 배워갔다.

누군가의 말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의 조각을 찾아내는 일.


그게 어쩌면,

진짜 '괜찮은' 관계의 첫걸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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