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느린 아이가 처음으로 '뒤처진다'를 깨달은 순간.
나는 그 안에서 비틀거리면서도
조금씩 걸음을 넓혀갔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이고,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거북이니까.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꾸준히 걸어 나가야 하니까.
인간에게 개인마다 보폭과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처음으로 속도와 성취를 배웠던 시절.
병원과 문화센터에서는 몰랐다.
그곳은 순진한 내게 너무나 친절한 세계였다.
조금 느려도, 조금 틀려도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학원은 달랐다.
처음 입성하기 전에 느낌이 왔다.
신발장 앞에 빽빽하게 놓인 운동화 라인.
신발을 어디 둬야 할지 어리둥절한 나와 달리,
아이들은 로봇처럼 익숙한 동작으로 신발을 정리하고
말도 섞지 않은 채 지정석에 정확히 앉았다.
슬쩍 보인 아이들 책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페이지에 형형색색의 필기가 빼곡했다.
예습이 '기본값'인 세계.
종이 넘기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필기음만이 유일하게 적막을 채웠다.
'아, 이곳이 진짜 세상이구나.'
그 생각이 어린 마음에 스르륵 들어왔다.
처음엔 어머니가 "네가 좋아하는 것부터 하자."며
이 낯선 세계와의 충돌을 조금 늦춰주셨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미술학원과
그리고 주판 이후 어머니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던
산수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셨다.
미술 시간은 숨이 편했다.
크레파스 냄새, 스케치북의 바스락 거림.
재능이 있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사라졌다.
선생님은 늘 내 실수보다 좋은 부분을 먼저 말했다.
"색을 잘 쓰는 거 보면 재능 있어."
그 한마디면 내가 피카소라도 된 듯 뿌듯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행세가 초췌해 보이는 언니, 오빠가 하고 있는 것이 입시 미술이고,
미술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재능형이 아니었고 노력으로 열심히 하기엔,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
피아노는 또 다른 세계였다.
배경음으로만 듣던 곡을 내 손으로 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즐거웠다.
병원에서 듣던 기계음 대신 도레미파솔이 흘러나오는 시간.
문제라면, 악보를 몇 달 동안 못 외워 매번 '도'를 기준으로 음계를 세야 했고,
양손으로 치는 곡이 나오면 왼손이 말을 안 들어 스스로 면담의 시간을 자주 가졌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손목을 둥글게 유지한 채
건반을 정확히 누르는지, 내겐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다음 선택한 건 컴퓨터 학원이었다.
아버지가 "앞으로 필요하다."며 권하셨고,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성취라는 걸 배웠다.
첫 수업은 포토샵.
사진을 자르고, 색을 바꾸고, 글자를 넣는 단순한 기술이 이렇게 중독성 있을 줄 몰랐다.
여기서 끝났으면 재밌는 컴퓨터 수업이었을 텐데
막상 자격증 반에 들어간 뒤부터는 반복 작업의 시작이었다.
시험지 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야 했고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
포토샵 2급 자격증을 따냈다.
시험장에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시험 후 찾아온 해방감 그리고 합격 문자가 완성한 전율.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성취의 맛이 너무 진했던 탓일까.
1급 기출문제집을 펼쳤으나 학습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고 학원을 그만뒀다.
끈기가 짧아서였을까, 반복작업에 질려서였을까.
도망이라기엔 빠르고, 포기라기엔 자연스러운,
그런 '나다운 결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학원의 본진, 영어와 수학이 나타났다.
영어 학원 첫날.
아이들이 파닉스를 넘어 문장을 술술 읽고 있는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내 책은 아직 A apple, B banana에서 헤매고 있는데
옆자리 아이는 원어민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며
단어를 대충 던지는 정도까지는 올랐다.
"go bathroom"
문법은 틀렸지만 의미는 통했다.
어려서 다행이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질문도 많이 해 선생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으니까.
그게 또래들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수학은 더했다.
친구들은 문제집 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나는 첫 장의 '예제 1번'을 붙잡고 있었다.
분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결국 문제 자체를 외워버렸다.
이때부터 수학은 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중학교 2학년 선행, 어떤 아이는 고등수학을 하고 있었다.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질투조차 나지 않는 그 묘한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살아가면서 늘 겪을 감정인 것임을 지금에서야 깨우친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에는 빠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반대편에 가까운 아이였다는 걸.
모든 게 낯설었다.
병원에서는 "지금 속도 좋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학원에서는 "좀 더 빨리 해볼까?"라는 말이 당연하게 되었다.
속도를 비교하는 세계,
순위가 있는 세계,
처음으로 '뒤처진다'는 걸 배운 세계.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거북이가 얼마나 빠르겠냐만, 그래도 달렸다.
겨우 따라잡을 정도로.
수학 문제를 통로 외우는 한이 있더라도,
영어 지문 통으로 외우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들이 물었다.
"굳이 왜 외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난 오늘 진도를 이해하지 못해."
남들 속도에 맞추진 못했지만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겨우 채워나갔다.
그 시절, 나는 타인의 속도가 빠르다는 걸 배웠다.
부모님에게 하소연했던 날이 있다.
"왜 나는 느려?"
그 말이 어머니는 마음이 안 좋으셨는지
학원에 보낼 때마다 요청하신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주세요."
어릴 땐 자존심 상해 어머니의 행동을 싫어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한 말이었다.
돈을 내고 배우러 가는 것이 '학원'이라면,
아이 속도에 맞추는 것도 학원의 역할일 테니까.
학원이라는 딱딱한 공간은
나에게 처음으로 세상의 질서를 알려준 곳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비틀거리면서도
조금씩 걸음을 넓혀갔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이고,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거북이니까.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꾸준히 걸어 나가야 하니까.
학원은 경쟁의 세계였지만
동시에,
거북이가 용기 내어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첫 번째 현실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