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 묻은 먹처럼

25화| 희미해지려 더 길어지는 기억

by 오립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다.

그 시절 나는 병원 입원 치료와 더불어, 사설 치료라는 걸 함께 받고 있었다.

부모님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찾아낸 곳이었다.

주중에는 정규 치료를 받고, 병원 스케줄이 끝난 날이면 차를 타고 사설 치료실로 향했다.

그곳은 병원과 달리 조금 더 활동적이고, 사적인 유대가 많은 키즈카페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그 사설 치료실은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운동 매트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났고,

선생님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내 담당 선생님도 남자였지만 오히려 너무 잘 맞았다.

장난도 자주 치고, 농담을 던지고,

아이를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게 더 위험하다는 걸 그땐 몰랐지만.


여름 끝자락,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나는 종아리 스트레칭 기구 위에 올라가 있었다.

몸을 길게 늘여주는 과정이라, 선생님의 보조가 필요 없는 동작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균형을 잡으며 버티고 있었고 선생님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아, 뭐 다른 교정인가?'하고 생각했다.

재활치료는 신체 접촉이 많았으니까.

옷 속에 손이 닿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는 그것을 '치료의 한 과정'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날의 손길은 달랐다.

불필요했고 의도적이었다.


그렇게 손은 멈추지 않고 브라 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때 머릿속이 잠깐 재부팅됐다.

멍해진 머리가 밀쳐야 하는지,

드라마처럼 뺨을 때려야 하는지,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예민한 건가?

아니, 정말 뭔가 이상한데... 내가 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더 헷갈렸던 건, 그 선생님이 그 순간에도 평소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웃음 때문에 그저 '장난이겠지'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렇게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날을 조용히 덮었다.


그때 나는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어른의 표정으로 '상황의 의미'를 판단하던, 단순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였다.

장난과 폭력의 경계가 종잇장처럼 얇다는 걸

세상은 내게 가르쳐준 적 없었다.


몇 달이 흘렀다.

겨울 초, 같은 병실 보호자들과 어머니가 대화를 대화를 나누는 걸 우연히 들었다.


사설 치료실에서 말 못 하거나 인지가 약한 아이들을 골라

성추행을 일삼던 치료사가 뉴스에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어, 그거 나도 비슷한 거 겪었는데."


순간,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음량이 줄어든 듯 정적이 찾아왔고,

어른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지며

고개가 전부 나에게 향했다.


'내가 괜히 말했나.' 싶은 서늘함에

무서움과 당혹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머니는 천천히 다가와, 차분하게 물었다.


"... 무슨 일이 있었어? 천천히 말해봐."


그제야 나는 그날의 일을 입 밖으로 꺼냈다.

사건이 벌어진 지 3개월 만이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약간 채근하듯 묻는 어머니에게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몰랐다고.

그게 장난인지, 아니면 내가 이상한 건지

판단이 안 됐다고.

스스로 오해를 만들까 봐 침묵했다고.

성추행이라는 단어는 뉴스를 통해서만 들었지

현실에서는 훨씬 더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헷갈렸다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고

그날 오후, 그 치료실은 난리가 났다.


나중에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어른들의 격한 분노를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화산처럼 터져서 따졌고

어머니는 바다처럼 고요한 분노로 상황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치료사의 답변은 단 하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도착한 메시지.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기분이 상했다면 죄송합니다.'


만약이라면.

그랬다면.

네가 느꼈다면.


그 모든 문장 속에는

'나는 잘못이 없다'는 의미만 가득했다.

그는 끝까지 그 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배웠다.


성추행이라는 건, 때때로 너무 모호해서

피해자 스스로를 먼저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을.


어른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

아이들은 쉽게 속는다.

그 모호함은

가해자에게는 유리하고

피해자에게는 죄책감을 남긴다.


그날 이후로 부모님이 내게 말한 건 단순하고 분명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말해.

그게 먼저야.

시시비비는 어른들이 가릴 일이고

넌 말할 권리가 있어."


그 말은 지금도 내 안에서 울린다.


상처는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들과의 거리에서 미세한 감각을 잃었다.

누군가 갑자기 다가오면

심장부터 움츠러들고

등골이 먼저 차가워졌다.


때때로 가볍게 스치는 손길에도

갇혀 있던 기억을 깨우는 방아쇠가 되었다.


신체 접촉에 예민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였고,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혼자 감당해 온 그림자였다.


그래서 늘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슬쩍 뒤로 빼는 선에서 조용히 경계를 그었다.


그 얼굴은 시간 속에 묻히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 어둠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지우개로 밀어도 흐릿하게 남는 잔흔 같은 것.


그리고 나는 결국 이 기억을 이렇게 정의하게 되었다.


"붓끝에 묻은 먹 같은 기억이다."


한 번 종이에 닿으면

선은 희미해질지라도

희미해지기 위해

두루마리는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먹이 옅어지는 만큼

나는 그 기억을 더 길게 써 내려가야 했다.

흔적은 약해지지만

그 흔적을 감당하기 위해 내 삶의 길이는 더 길어지는 셈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다.

잉크가 다 빠질 때까지,

내 안의 어둠이 물처럼 옅어질 때까지.


그렇다고 이 경험이 나를 약하게 만든 건 아니다.

더 큰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감각을 얻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 기억을 역사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태평성대도, 전쟁도, 몰락도

모두 역사의 한 부분이듯이.


마지막으로 그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넌 잘못한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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