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할머니의 울음이 내 몸에 그어준 선.
그 장면은 오래 미뤄뒀다.
마치 서랍 맨 아래에 넣어둔 유리조각 같다. 꺼내려면 손이 먼저 겁을 먹고, 꺼내고 나면 공기가 달라진다. 그런데도 결국 적는다. 그날은 내 몸을 대하는 방식에 확고한 선이 하나 그어진 날이니까.
나는 신체적 장애가 있다.
치료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몸이 조용히 굳어간다. 눈에 보이는 속도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문득 "어? 이만큼이 안 되네." 하고 깨닫는 방식으로. 근육은 줄고, 움직임은 짧아진다. 지금의 나는 안다. 몸은 가만히 두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두면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어렸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나.
부모님이 “너 운동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라고 말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그 말은 마음 깊숙이까지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때 내게 ‘나중에’는 너무 멀어 실감이 안 났고, ‘오늘’은 너무 길어서 지치기만 했다.
오전에는 병원 치료가 있었다.
형광등이 내는 낮고 얇은 윙- 하는 소리, 고무 매트 특유의 냄새, 기구의 차가운 감촉, 반복되는 구호 같은 카운트. 하나, 둘,... 다시 하나, 둘, 셋. 내 몸은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만큼 되지 않는 손과 다리 앞에서 화가 났고, 그 화는 바깥으로 뻗지 못하고 내 안에서만 빙글빙글 돌았다.
"왜 너는 이래."
"왜 내 말을 안 들어."
그 말들은 누구에게도 내뱉지 못하고, 결국 내 몸에게만 갔다.
그리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 손이 기생수 같다고. 물론 비유일 뿐인데도, 내 몸인데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면 낯선 것이 안에 붙어사는 기분이 든다.
어떤 날은 그 분노가 너무 커서, 나는 아주 나쁜 방식으로라도 “내가 뭔가를 정하고 있다”는 감각을 붙잡으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고, 겁먹은 방식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인 아이가 가장 가까운 곳에다 분노를 꽂는 날. 하필 그 가까운 곳이 내 몸이었던 날.
그런 오전이 끝나면 오후에는 사설 치료를 또 받으러 갔다.
치료하고, 운동하고, 다시 치료하고, 다시 운동하고. 반복의 반복.
이건 지루함을 넘어, 마음을 닳게 하는 리듬이었다. 몸이 말을 안 들으니 화가 나고, 화가 나니 더 삐딱해지고, 해야 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꼼짝 못 하는 기분이었다. "해야 한다"는 말이 목줄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었다.
너무 답답해서, 너무 화가 나서, 내 마음이 나를 들이받아버린 날.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친할머니 집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숨기려고 했다. 아이는 늘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 한다. 대충 덮고, 대충 감추고, “아무 일도 아니야” 같은 얼굴을 만들어서. 그 얼굴이 진짜가 되길 바라면서. 하지만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보셨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말이 없으셨다. “왜 그랬어?” 같은 질문도 돌아오지 않았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또 한 번 들이마시는 사이 영겁처럼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몇 초 동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무슨 말이 올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할머니가… 울셨다. 내 앞에서. 처음으로.
그 울음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
화가 섞여 뜨겁고 속상함이 더해져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할머니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로, 화를 내며 우셨다.
손주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가 되어버린 사람의 울음이 그날 처음 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가 하신 말이 아직도 깊숙한 기억 한 줌에서 떠오른다.
"너 한 번만 더 이렇게 손 못 살게 두면 할머니 두 번 다시 너 안 봐."
그 말이 무서워 울었다.
'안 본다'는 말은 어린 나에게 세상의 끝처럼 들렸다.
어쩌면 나는 할머니의 감정이 무거워서 울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다치게 하면, 그 상처가 나에게만 지는 게 아니라 내 피부를 지나 누군가의 마음을 같이 찢는다는 걸... 뒤늦게 할머니의 눈물로 깨달은 것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말은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붙잡아두겠다는 의지였다. "이렇게 하면 다시 안 본다"는 말은, "나는 너를 계속 보고 싶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서툰 할머니의 큰 감정은 말로 다 전달되지 않았지만, 눈시울 붉어진 낯선 얼굴 하나로 충분했다. 나는 그 얼굴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그렇게 하진 않았다.
물론 사람이 한 번에 완벽해지진 않는다. 화는 여전히 올라오고, 답답함도 여전해서 가끔은 내 몸을 깨우듯 치기도 했다. '정신 차려' 같은 마음으로. 하지만 적어도 살이 파일 정도로 내 몸을 몰아붙이진 않았다. 선이 생겼다. 할머니의 눈물로 그어진 선은 너무 뜨겁고 아파서,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선 같았다.
그날은 내 마비된 부분이 '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생하며 살아야 하는 대상'이 된 날이었다.
부모님의 설명은 머리에 남고, 할머니의 호통은 가슴에 새겨졌다.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나서, 최종적으로 내 마비된 육체를 받아들이는 첫걸음이 되었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 없고, 그래서 이 기억을 꺼내는 일이 더 어렵다.
나는 이 날을 조각난 거울처럼 꺼내 본다. 상처가 아니라, 선을 세운 흉으로.
몸이 마음대로 안 되어 숨이 턱 막히는 날, 내 몸을 해치고 싶은 날, "왜 나만"같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날. 그러 때면 속으로 짧게 말한다.
여기까지
여기서 멈춰, 할머니 우신다.
그리고 다시, 내 몸을 이해하는 쪽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