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겨누며 자라나는 성실함에 대하여.

29화| 때로는 도움 받는 것이 가장 용기 있는 생존법이다.

by 오립

치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마주하는 일상은 서창한 결심보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채워진다. 예를 들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제 속도로 자라나는 손톱 같은 것들 말이다.


손톱은 무서울 정도로 성실하다. 누구도 명령한 적 없건만, 시간은 어김없이 손끝을 밀어 올린다. 세상은 그 성실함을 예찬하며 반짝이는 색을 덧칠하고 화려한 장식을 얹어 ‘아름다움’이라 부르곤 한다. “손이 참 고우시네요”라는 다정한 인사치레가 오가는 동안, 나는 내 손끝에서 자라나는 그 투명한 부지런함이 못내 두려웠다.


내게 손톱은 예뻐지기 위한 소품이 아니라, 나를 겨누며 자라나는 서늘한 칼날이다.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왼손이 있다. 경직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이면 손가락은 내 의지를 비웃듯 손바닥을 향해 몸을 웅크린다. 주먹이 점점 더 꽉 쥐어질수록, 짧았던 손톱은 어느새 날을 세워 연한 손바닥 안쪽을 파고든다. 살이 눌리고 긁히다 못해, 어느 순간 숨을 들이켜게 만드는 통증이 시작된다.


억울한 건, 아프다고 해서 그 손을 쉽게 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펴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내 몸의 경직은 내가 끄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니까.

고장 난 전구처럼 제멋대로 깜빡이고, 풀어야 할 때 오히려 더 단단히 조여진다. 그래서 내게 손톱이 길어진다는 건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살을 파고들기 전까지의 긴박한 ‘카운트다운’에 가깝다.


이번 주 안에는 반드시 잘라야 한다. 남은 시간은 며칠뿐.

이대로 두면 통증은 물론이고, 그 고통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더 깊이 잠식할 것이다. 종일 내 안을 긁어대는 그 날카로운 감각.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진짜 난관은 그다음 문장에 숨어 있다.


나는 혼자서 이 칼날을 잘라낼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손톱을 깎는 일은 호흡만큼이나 당연한 일일 테다. 손톱깎이를 집어 들고, 손가락을 내밀어, 가볍게 ‘딸깍’. 그 사소한 동작을 위해 내게는 너무나 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힘이 들어갈수록 말려 들어가는 왼손은 순순히 손가락을 내어주지 않는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손톱 하나를 자르기 위해, 내게는 세 개의 손이 필요하다.

내 오른손 하나로는 턱 없이 부족하고, 내 왼손은 협조해주지 않으니, 타인의 손 하나가 더 보태져야만 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두 손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세 개의 손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만 비로소 일상을 지켜낼 수 있는 ‘세 손 인간’이 된다.


처음엔 그 사실이 못내 자존심 상했다. ‘손톱 하나 내 손으로 못 깎나’ 하는 서늘한 목소리가 마음 한구석에서 몸집을 불렸다. 손톱하나에 쩔쩔매는 현실 앞에 서면 나는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에 더 열중하곤 했다. 남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아프게 찌르는 나쁜 버릇.


그러다 조급한 마음에 혼자 가위질을 하다 피를 본 적도 있다.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내 손끝은 쓰임이 적은 만큼 살이 연약해져 있고, 그 여린 살은 마치 돌 틈을 찾아 번지는 이끼처럼 손톱 밑까지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놓곤 했다. 손톱과 살의 경계가 흐릿해진 자리. 딸깍, 소리와 함께 손톱이 아닌 살이 씹혀 들어갈 때 나는 통증보다 먼저 예감한다.

‘아, 또 붉은 점이 배어 나오겠구나.’


피는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조용히 번진다. 얇은 날에 비해 내 살은 너무나 무력하다. 손을 급히 빼거나 놀라 털어낼 수도 없다. 내 왼손은 여전히 굳어 있으니까. 피는 그렇게 사소한 관리의 끝자락에서 예고 없이 맺힌다.


그래서 내 타임어택은 늘 짧고도 절박하다. 너무 길면 살을 파고들고, 너무 짧게 깎으려 하면 연한 살이 씹힌다. 안전을 위해 남겨둔 그 한 뼘의 여백이, 머지않아 다시 나를 겨누는 위험의 길이가 된다. 미룰 수 있는 선택지는 없다. 그저 ‘해야만 하는 날’이 올 뿐이다. 그저 '해야만 하는 날'이 올 뿐이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그 다정한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이 손톱의 세계에서만큼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손톱을 자라게 하고, 경직을 더 견고하게 만들며,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변수들만 늘려놓을 뿐이다. 나는 그 무정한 시간의 방향에 맞서 부지런히 칼날을 잘라내야 한다.


손톱을 깎는 그 짧은 찰나에 내가 배우는 건, 나의 부족함이 아니다. ‘나는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내가 택한 생존의 방식이다. 누군가 내 손을 조심스레 펴주고, 흔들리지 않게 손끝을 잡아주며, 손톱깎이의 각도를 세밀하게 맞추는 순간. 그 작은 협력이 끝난 자리엔 비로소 고요한 평온이 찾아온다.


그 딸깍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손톱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손톱의 속도를 간신히 뒤쫓고 있는 거라고. 손톱은 달아나는 쪽이고, 나는 그 뒤를 쫓아가는 쪽이라고.


오늘도 손톱은 자란다.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다시 손톱깎이를 든다. 그리고 이 사소하고 번거로운 일을 반복하며, 나는 나를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도 괜찮다. 나는 손톱 하나 때문에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작은 손톱 하나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기어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이니까.


마지막으로, 이건 손톱 너에게 하는 진심인데. 너는 제발 좀 덜 성실했으면 좋겠다. 너 때문에 내가 자꾸 ‘세 손 인간’이 되어야 하잖아. 나랑 속도 좀 맞추자. 응?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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