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은 원래 늦게 도착하는 법이라서.

30화| 다음 문을 열기 위해 갈무리하는 내 방식.

by 오립

새 교복에는 고유의 냄새가 있다. 갓 출고된 옷에서만 나는, 어쩐지 서늘한 비닐의 기운과 뜨거운 다림질의 증기가 뒤섞인 냄새. 옷걸이에 걸어두면 방 안 공기조차 ‘새 학기’라는 낯선 계절로 바뀌어버리는 듯한 묘한 힘이 그 냄새 속에 들어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거대한 파도가 나를 향해 밀려오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 그 냄새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설레기보다 겁을 먼저 집어먹었다. 빳빳하게 각이 잡힌 교복은 내게 ‘다음 단계’로의 진급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다른 세계’로의 강제 편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복의 매끈한 소맷자락을 몇 번이고 매만지던 어머니가 나직이 입을 뗐다.

“괜찮을 거야. 힘들면 혼자 참지 말고 바로 말해야 해.”


어머니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의 무게는 내 어깨를 더 짓눌렀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 뒤에 숨은 부모의 불안을 이미 예민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수많은 변수를 부모는 늘 자식보다 앞서 계산한다. 부모의 마음속에서 불안의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눈에 띄게 말이 적어졌다. 소리 대신 자세로 나타나는 아버지만의 걱정들. 교복 바지의 주름을 펴는 투박한 손길과 가방 지퍼를 몇 번이고 열었다 닫는 분주함이 나를 더 떨게 했다. “괜찮다”는 확신보다 “괜찮을 거야”라는 서툰 위로가 훨씬 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게 중학교 입학은 하루 종일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 같은 공간으로의 입성이었다. 뇌출혈로 인해 남겨진 왼쪽 편마비라는 흔적은, 남들에겐 평범한 학교생활을 내게는 매 순간 치열한 사투로 바꾸어 놓았다.


머릿속으로 점심시간의 풍경을 수십 번이나 리허설했다. 식판을 한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들고, 남은 한 손으로 국자와 집게를 다뤄야 하는 상황. 밥이 쏟아지거나 국그릇이 흔들리는 찰나, 내 뒤에 선 아이들이 보낼 “빨리 좀 하지”라는 무언의 압박. 그 차가운 시선 앞에서 내 몸의 경직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고장 난 전구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굳어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화장실에서의 사투는 또 어떠한가. 교복 스타킹을 내리는 것은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다시 끌어올리는 동작에는 양손의 정교한 협응과 강한 힘이 필요하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스타킹은 꼬일 것이고, 그 꼬임은 곧 내 자존심의 꼬임으로 이어질 터였다. “왜 이것도 못 해”라는 자책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내 몸은 다시 타인의 것처럼 멀어질 것만 같았다.


실내화로 갈아 신는 사소한 일조차 내게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신발 뒤꿈치가 잘 들어가지 않아 쩔쩔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등을 치고 지나가면? 종이 울려 복도가 아이들로 가득 찰 때 나만 가장 늦게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면? 늦는다는 것은 곧 눈에 띈다는 뜻이었고, 나는 눈에 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다. 그런 작은 전투들을 하루에 몇 번이나 치러야 하는지, 나는 이미 온몸으로 예감하고 있었다.


“우리 한번 연습해 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숨이 가빠질 때쯤, 어머니가 내 발치에 실내화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연습’이라는 단어는 이상하게도 나를 덜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결핍된 존재라는 선언이 아니라, 그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다정한 위로였다.


어머니는 실내화의 입구를 살짝 벌려 방향을 잡아주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발을 밀어 넣었다. 뒤꿈치가 걸려 얼굴이 화끈거릴 때,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급하면 더 안 되는 거 알지?”


그 말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맞다. 지금의 내가 돌아봐도, 나라는 인간은 급하면 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급해지면 경직이 먼저 반응하고, 손이 말려 올라가며 내 몸이 내 당황함을 세상에 고자질해 버린다. 그렇게 신발을 신고 벗는 연습을 반복하며, 나는 비로소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오늘은 이 연재의 30화다.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 ‘저장’ 버튼을 누르고 나면 나의 유년기가 일단락되고, 방 안은 평소보다 훨씬 더 고요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지난 30일 동안 이 이야기들을 기록하며 ‘정리’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배웠다. 내게 정리란 먼지 쌓인 과거를 말끔히 치워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 입은 기억들이 더는 찢기지 않도록, 정성껏 매만져 접어두는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해야 했던 이야기, 세상으로 다시 나가보려다 오히려 마음을 다쳤던 날들, 그럼에도 치료실의 하얀 벽 사이에서 선생님들과 웃음을 터뜨렸던 시간들. 그 파편 같은 조각들을 모아 한 문장으로 엮어보니 결국 이런 결론이 남았다.


“나는 단 한순간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내가 짊어진 삶의 조건들이 너무 무거워, 내 곁을 지키던 이들의 손길조차 때로는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했고, 더 민망했으며, 이제야 뒤늦은 고마움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고마움은 원래 목적지에 아주 늦게 도착하는 마음이라서, 나는 그 마음을 이제야 조심스레 꺼내어 기록해 본다.


나의 유년기를 가득 채웠던 초등학교 파트는 여기서 잠시 접어두려 한다. 이것은 문을 닫아거는 작별이 아니라, 다음 문을 열기 위한 준비다. 이제 나는 중학생이 된 내가,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깨지고 다시 일어섰던 날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처음으로 교복 단추를 여미며, 그 문 앞에서 손잡이를 한 번 더 단단히 잡아보았다.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보며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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