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부모님 없이 떠난 1박 2일, 대화가 열어준 세상
솔직히 말하자면 그날의 일정은 선명하지 않다.
워터파크에서 무엇을 몇 번 탔는지, 점심을 뭘 먹었는지, 물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런 것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가장자리부터 흐려졌다. 대신 이상하게도 사람은 남아 있다.
장면은 지워져도 목소리의 결은 귀에 박히고, 웃음의 풍부함은 마음에 머문다.
그래서 나는 그날을 '워터파크에 다녀온 날'로 기억하기보다, 내 앞에서 여러 개의 문이 열리던 날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병원에서 장애 아동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학생 자원봉사 언니, 오빠들이 아이 한 명씩을 맡아 부모님 없이 1박 2일을 함께 보내는 일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 대담한 계획이다. 아이에게는 첫 독립이었고, 보호자에게는 큰 결심이었으며, 자원봉사자에게는 책임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때의 나는 두려움보다 즐거움이 더 컸던 여행이었다. '부모님 없이'라는 말이 긴장감보다는 도전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늘 누군가의 시간표 속에 살던 내가 잠깐이나마 '내 일정'을 갖는 느낌. 그 가능성이 내 마음을 먼저 들뜨게 했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비장애인 선배님들을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아닌, 인생 선배님. 내가 조금만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정거장에 이미 서 있는 사람들이자 어른이 되기 직전의 사람들이었다. 말투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어른 쪽으로 기울어 있고, 웃음이 싱그러우며 자기 미래를 꿈꾸는 대학생들이었다. 내가 알던 세계와 닮아 있으면서도 결이 다른 세계. 그 차이가 신기했다.
이름이 불리고, 옆자리가 정해지고, 그렇게 짝이 만들어졌다.
나를 맡은 언니는 사회복지학과였고 내 장애인 친구를 맡은 오빠는 경찰행정학과였다.
얼굴과 이름은 기억이 희미한데 전공 이름이 또렷한 건 아마 그 단어들이 내게 '문패'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전까지 내게 대학생은 그냥 '대학생'이라는 덩어리 하나였다. 그런데 그날 처음 알게 됐다. 사람은 덩어리가 아니라, 각자 다른 문을 들고 살아간다는 걸. 어떤 문은 '돌봄'이고, '질서'였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이 사실을 깨우치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지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회복지학과 언니는 말의 온도가 달랐다.
"힘들지?"보다 "어땠어?"를 먼저 묻는 사람이었다.
"이거 해야 해."보다 "이거 해볼래?"를 먼저 꺼내 주는 사람이었다.
권유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게 하는지, 그때 처음 배웠다.
병원과 학원에서의 나는 늘 '해내야' 했다. 그러나 언니는 내게 다른 질문을 건넸다.
'나 할 수 있나?', '나 어디까지 할 수 있지?'
그 질문을 나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언니는 내 기준이 생길 때까지 시간을 조금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친구를 맡은 경찰행정학과 오빠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선명했다.
말의 선이 또렷했고, 상황을 보는 눈이 빨랐다.
사람들이 몰릴 때 시선이 가는 방향이 있었고, 아이들 사이가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말투가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시끄러워져도, 누군가는 조용히 길을 만든다는 걸 그날 알았다.
그리고 그 사람도 완벽하진 않았다. 가끔 흐트러지고, 실수도 했다. 다만 놀라웠던 건 그다음이었다. 주눅 들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게 '회복력'이라는 걸 처음 보았다.
워터파크는 배경 같았다.
물소리는 시원하고, 사람 소리는 합창처럼 겹쳤다. 튜브는 그 속을 빙글빙글 돌며 회전초 같은 존재감을 뽐냈다.
햇빛과 타일이 진한 사랑이라도 나눴는지, 발바닥은 잊히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여름의 기억은 대체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게 남은 소란은 물이 아닌 대화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그날 질문이 많아졌다는 것. 모르는 세계 앞에서 넘쳐 흐르는 호기심에, 새끼 참새처럼 "짹짹" 댔다. 귀찮을 법도 한데도, 그들은 성실히 답해줬다.
그 답변들이 열쇠가 되어 내 안의 미지의 문이 하나씩 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바깥이 보였다.
캠퍼스라는 말이 풍경처럼 느껴졌고, 학과라는 단어는 길처럼 느껴졌다. '세상'이라는 게 병원 바깥에 한 덩어리로 놓여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는 사실이 몸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그 갈래들 사이에 내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날의 나는 처음으로 '닿을 수 있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서의 지독한 갈증이 아니라. 장애인 또한 닿을 수 있는 세상의 공간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날을 "부모님 없이 떠난 1박 2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삶의 다른 어른들이 등장한 날로 기억한다. 내 세계에 등장인물이 늘어난 날이자, 알고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일깨워준 '조력자'들이 나타난 날.
세상은 넓다고.
너는 그 넓음의 바깥이 아니라, '함께' 있다고.
물론 현실은 그다음 날부터도 그대로였다. 치료는 계속됐고,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런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변화가 생겼다.
'난 커서 어떤 학과를 들어가야 되지?'
처음으로 내 미래를 대한 고민하고 계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삶이 치료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 그리고 내가 그 넓음 안을 유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날의 일정은 흐릿해도, 내 미래는 안개가 조금 걷힌 것처럼 또렷해졌다.
나는 그날 여러 개의 문을 만났고 이 문은 지금도 가끔, 답답한 날에 아주 작게 열린다.
"여기 말고 길이 있다"는 소리로.
세상은 생각보다 갈래가 많고, 그 갈래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다음 날도 치료실 문을 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