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따로 불려 나갔다.

26화| 겨울인데도 안 춥던 날, 형광등 아래서 받은 초대장.

by 오립

어릴 때 나는 초대장을 받았다.


리본도 봉투도 없었다. 다만 병원 복도 끝, 형광등 아래에서 누군가 아주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고

그 목소리 끝에 작은 문이 하나 열렸다.


"오늘... 잠깐 나갈래?"


병원은 대개 '해야 하는 것'으로 가득한 곳이다. 시간표처럼 정돈된 움직임, 반복되는 동작, 더듬어도 다시 돌아오는 자리. 그런데 그날의 한 문장이 나를 티파티로의 초대장처럼 들렸다. 웹소설 속 영애가 레이스 장갑을 끼고 마차에 오르듯, 나는 패딩을 입고 자동문을 통과했다. 마차 대신 엘리베이터, 정원 대신 주차장, 은쟁반 대신 플라스틱 컵. 잠깐이나마 '초대받은 사람'이 되었다.


첫 번째 초대장은 A 선생님에게서 왔다.

나는 청소년 치료실로 옮기기 전 성인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어느 날 청소년 치료실 친구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은 선생님이랑 1층 편의점도 같이 내려가고, 뭔가를 함께 사 오고, 웃고 떠들고... 세상이 더 넓어 보였다. 나는 늘 '치료'라는 단어 안에서만 움직이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 정말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선생님.. 저도 한 번만 같이 나가면 안 돼요?"


그랬더니 A 선생님은 내 예상보다 더 크게 답을 주었다.


"그럼 저녁 시간 두 시간 빼서, 근처 마트까지 걸어갈까? 거기서 떡볶이도 먹고 어때?"


그날은 겨울이었다.

숨은 하얗게 나왔고, 바닥은 얼어붙어있는데


안 춥더라.


진짜로 겨울인데 안 춥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그런 날이 있다. 누가 옆에서 속도를 맞춰주는 것만으로, 계절이 살짝 물러나는 날. A선생님은 "같이 걸어가는 것 자체가 운동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다정했는지, 나는 그날 '운동'이라는 단어를 잠깐 용서할 수 있었다. 벌칙이 아니라 산책의 다른 이름처럼 들렸다.


마트로 가는 길은 짧았는데, 내겐 긴 행진 같았다.

치료실에서만 존재하던 내가 바깥공기 속으로 꺼내진 느낌. 누군가가 내 속도를 맞춰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떡볶이 국물은 뜨거웠고, 그 뜨거움은 혀보다 먼저 마음에 닿았다. 나는 그 겨울 '따뜻했다'라고 기억한다. 사실은 겨울이 따뜻했던 게 아니라, 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던 거겠지.


그리고 두 번째 초대장은 B 선생님에게서 왔다.

치료실에서 소문은 정말 빨리 돈다.


"A 선생님이랑 떡볶이 먹으러 갔다며?"같은 말이 복도를 굴러다니던 어느 날, B 선생님이 내게 더 획기적인 초대장을 내밀었다.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 입양했는데... 보러 올래?"


당연히 가겠다고 했다.

그날 나는 선생님 집에서 세 달 된 말티즈를 만났다. 손바닥만 한 몸으로 방을 쏘다니고, 세상 무서운 것보단 신기한 게 더 많아 보이는 얼굴. 나는 그 작은 생명 앞에서 괜히 허리를 세웠다. 초대받은 사람은 자세부터 달라지니까. 물론 강아지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 앞에서는 여전히 구부정한 인생이었다.


B 선생님은 "잠깐 기다려, 저녁해 줄게." 하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나는 TV 앞에 앉았다. 여기서 내가 지금도 떠올리면 조금 민망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내가 먼저 말했다.

"저...'늑대아이' 보고 싶어요."

남의 집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영애 체면이 한 번 구겨졌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리모컨을 들어, 영화를 틀어줬다.


화면이 켜지고, 나는 그 반짝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다 돈이었다.

TV로 볼 수 있는 1,000원 영화. 그런데 내 기억에 남는 건 그 가격이 아니라 온도였다, "기다리는 시간도 너에게 줄게"라는 방식의 온기. 나는 그날, '허락'이라는 걸 받았다. 내가 무례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이 어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허락.


조금 뒤 파스타가 나왔다. 선생님표 파스타. 정말 맛있었다.

나는 그걸 잔치처럼 먹었다. 치료실 바깥에서 나는 잠깐 환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밥을 먹는 '아이'였다. 그 차이가 내겐 컸다. 아이는 그런 작은 차이로 숨을 쉰다.

숨을 쉬면, 하루를 더 버틸 수 있고.


그리고 B 선생님은 또 물었다.


"이번 주말에 애견카페 갈래?"


주말.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단어가 얼마나 비싼지 안다. 사람들은 주말 하나를 위해 평일 다섯 개를 버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귀한 하루를 떼어, 말티즈를 데리고 나와 애견카페를 갔다. 나는 그날 병원 창문이 아니라 진짜 창문 밖 세상을 부모님 없이 보았다. 병원 공기가 아니라 바깥공기가 폐까지 들어오는 날이었다. 내 어린 하루에 그런 날은 많지 않았고, 그래서 더 선명하게 남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이 모든 걸 "나만의 특별한 파티"라고 믿어서 더 행복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해주지 않는, 나만의 초대장. 그게 자랑스러웠고, 다정한 비밀 같았고, 내 인생의 작은 왕관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선택받은 영애'처럼 느꼈다. 현실은 선택받은 떡볶이 손님이었는데도.


하지만 지금은 안다.

A선생님은 야근을 하신 거였고, B선생님은 주말 추가 업무를 하신 거였다. 겨울이 춥지 않았던 건 날씨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퇴근 시간을 내게 건네준 덕분이었고, 파스타의 따뜻함은 누군가의 쉬어야 할 하루 위에 놓인 것이다.


그 사실이 내 기억을 더 길게 만든다.

가벼워서 희미해진 게 아니라, 무게가 생겨서 오래 남는 쪽으로. 그때 내가 받은 건 종이 초대장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 시절을 미안해하며만 꺼내고 싶지 않다.

그 초대들 덕분에 병원은 덜 답답했고, 치료실은 잠깐이나마 놀이터처럼 느껴졌으니까.

나는 웃는 법을 잊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웃음은 생각보다 오래 나를 살렸다.


그래서 이제야 제대로 말하고 싶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겨울이 존재하는 한, 안 춥던 그날의 온도가 여전히 내 안에서 김처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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