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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지훈 Aug 30. 2022

번역하다_vol. 8



저자     

차영지

정지우

주현선

최유경

최서정

차시현

임소이

홍현진          



차례     

cover story

언어의 목적 - 차영지


Life & Work

2차적 저작물과 표절 – 정지우

“반영”을 “Reflect”로 번역하지 말자 - 주현선

츤테레한 모습으로 간지나게 살아볼까? - 최유경

그래도 아직, 우리가 굶주리지 않는 이유 - 최서정

번역사 vs 번역가 - 차시현

카멜레온 문학상 - 임소이

히브리어 성경, 단순하지만 정교하다 - 유지훈     


시의 한 수

탈무드_피르케이 아보트(5:14) - Yehuda HaNasi     


번역논단

원래는 안 이럽니다(下) - 홍현진     


번역가의 서재

번역가의 인간학 - 정홍섭

효과적인 의태어 번역전략 - 정영지     


2022 번역 공모전               



본문에서     


언어의 목적

원저자는 왜 썼을까? 

       

사랑하는 연인과 식사를 한다. 맛부터 분위기까지 완벽하다. 세심하게 신경 써서 준비한 연인을 향해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기쁨의 연기가 내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사랑스럽다. 그런데 연인의 시선은 휴대전화에 고정되어 있다. 로맨틱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 단 한 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머릿속에 또 다른 연기가 더 크게 피어오르며 잔잔한 울림이 퍼진다. ‘매번 이런 식이지.’ 꿈결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연기는 이내 새로운 연기에 묻힌다. 새 연기는 새카맣게 산화되어 온 마음을 그을린다. 표정이 굳는다. 마음이 닫힌다. 무언가를 감지한 연인은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눈치를 보며 묻는다.   

  

“뭐, 또 왜 그래? 갑자기.”     


대화를 나누기 위해 머릿속에서 단어를 그러모은다.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 내면에서 피어오른 연기의 원인과 모양을 명확하게 설명해본다. 상대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표정이다.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며칠 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손짓과 발짓, 음의 높낮이까지 활용하여 대화를 다시 시도한다. 짜증이 돌아온다. 공감과 이해를 바라고 성의껏 설명했건만, 상대는 핑계 대지 말고 더 바라는 것이 있으면 명확히 말하라고 소리친다. 진심은, 전달되지 않았다.        

   

전하고 싶은 말이 툭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피어난다. 그대로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면 편리할 테다. 그러나 내면은 각자 분리되어 존재하기에 타인에게 내보일 수가 없다. 가장 닮은 단어를 추리고 최대한 비슷한 형태로 엮어 문장으로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마음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상대방의 마음에서 똑같이 재현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마음은 너무나 복잡해서 단순한 몇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마음은 연기와도 같기에, 이를 말로 묘사하는 것은 연기를 언어로 번역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술가는 그러한 내면의 연기를 가시적인 형태로 재구성한다. 그중 비유와 은유로 이야기를 직조하는 사람을 소설가라고 부르지 않을까 싶다. 독자가 어느 작품을 읽고 감명받았다면, 그건 그 독자가 저자의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서 피어난, 혹은 피어났던 연기가 저자의 것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업으로 소설을 번역하고 있다. 문학 번역가는 끝없이 고민한다. 원문의 단어를 고수할 것인지, 독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약간의 변형을 줄 것인지. 고전의 경우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미 돌아가신 원저자와 상의할 수도 없고, 독자의 취향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정답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번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일뿐이다. 같은 작품 안에서야 당연히 일관된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 요즘처럼 한 작품을 여러 사람이 번역하는 시대라면, 일관된 기준을 자신의 모든 작품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작가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처럼, 번역가를 보고 번역본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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