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증후군

딸국질 하실래요?

by olive

명실공히 우리나라는 드라마 강국입니다. 소재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수준이 높은지 정말이지 대단하다 싶습니다. 과거 방송된 드라마 중 독특한 아이템을 가지고 방송했던 TV드라마가 기억납니다.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동화 ‘피노키오'를 소재로 하여 만든 드라마인데 그 내용이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딸꾹질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에서의 ‘피노키오 증후군'은 다음의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피노키오 증후군'은 선천적 증후군으로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딸꾹질은 거짓말을 하면 바로 나타나고 거짓말을 취소하거나 인정하게 되면 그 증상도 사라집니다. 카톡이나 문자에서도 거짓응대를 하면 그 증상이 나타납니다. 사소한 거짓말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딸꾹질이 잦아들지만 양심에 반(反)하는 심각한 거짓말인 경우에는 바로잡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지속됩니다. 물론 ‘피노키오 증후군'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증후군이긴 하지만 이 발상이 참신하니 재밌습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더 흥미로운 것은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언론의 오보나 거짓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멜로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 각성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좋습니다. 피노키오 증후군을 통해 진실을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개인적 생각과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결국 마음을 다 들킬 수밖에 없는 멜로적 매력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딸꾹질을 하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가 거짓말을 흔하게 하고 있었다는 사소한 자각과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거짓된 말의 파괴력을 절감하게 합니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 인 것처럼 꾸며서 이야기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거짓말의 단계를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순간 툭 튀어 나오는, 흔히 둘러댄다는 표현에 익숙한 충동적 단계와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습관적 단계, 그리고 병적인 현상으로 자기최면에 빠져서 자기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과 자기가 만들어 낸 이야기에 자기가 도취되어 결국 그것이 사실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믿게 되는 뮌히하우젠증후군(Munchhausen Syndrome)이 나타나는 단계로 구분합니다. 거짓말이 심해지면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고, 말을 함에 막힘과 망설임이 없는 거짓말로서는 가히 최고의 단계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만약,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을 때 딸꾹질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을 해보니 뜻밖에도 이 세상이 조금은 삭막해 질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다 바른 말만 한다면, 감정에 반(反)하는 말들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닌 비수(匕首)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이란 단어 자체는 거북스럽지만, 거짓말이 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나봅니다.

그렇지만 편리에 따라 구별하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빨간 거짓말'과 ‘해도 무방하다' 여기는 ‘하얀 거짓말'도 서로의 상황과 기준에 따라 충돌을 경험하기도 하니 빨강과 하양의 정확한 경계는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믿고 사는 사회를 외치고는 있지만 정작 그 구성원들인 각각의 ‘나'들은 위로의 말조차 거짓말이 될 수 있는, 사소한 것부터 엄청난 것까지 다양한 거짓말 속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상처받기 싫고, 위로가 필요하며,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바라기 때문에, 거짓말은 스스로를 위한 방어기제로 누군가에 의해서 규정지어진 것이 아닌 본성에 의한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이 말을 달리 바꾸어보면 내가 참 소중하다는 의미인데 이런 소중한 나를 위해서 빨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어찌 좀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우리를 망치게 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소중한 ‘나의 가치'를 위해서 사유가 좀 깊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진실과 거짓이란 상황적 딜레마에 빠졌을 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말 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하니 둘러대는 말이 아닌 지혜의 말을 빌리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뉴스에서, 국회에서, 학교에서, 진실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라도 평생 딸꾹질 소리를 듣고, 딸꾹질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끔찍한 상상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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