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청춘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내 주변의 것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어느 것 하나 예전의 것과 같은 것이 없습니다. 어디 주변의 것만 변할까요? 나만 봐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으니 이 또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해 한해가 다르고 한 달 한 달이, 하루하루가 다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최근의 것들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는 더 그러합니다. 아직은 치매라는 단어가 익숙해 질 나이는 아닌데 하면서도 점점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선명해집니다.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의 분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국어 책의 시작입니다. 철수도 놀고 영희도 놀고 바둑이도 같이 놀았던 국어책 속의 세상. 쟁반같이 둥근 달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던 수채화 같은 그림들과 또박또박 곱게 쓰여 진 글자들. 생각 만해도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것이 아무래도 추억을 먹고 살아야 하는 나이가 온 듯합니다.
몇 해 전, 친구들과 설왕설래하는 곡절 끝에 나이트클럽엘 갔습니다. 꽤나 오랜만이었던 까닭에 뜬금없는 긴장감과 주책맞은 설렘마저 느껴졌습니다. 참 재미난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장동건, 강호동, 김수현 등 인기인들의 이름을 빌어 예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전 대학시절에 나이트 클럽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ㅜㅜ)예명이 장동건인 분의 안내로 제일 크다는 방에 자리를 잡았지만, 인원수에 비해 방이 작은 까닭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중년의 모습들이 보기에 참 재미있습니다. 주문한 술과 안주가 차례로 들어옵니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테이블 세팅을 해주는 사람은 딱 봐도 아주 젊은 청년입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다소 서투르게 세팅하는 것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듯합니다. 그가 뒤돌아 반대편 테이블에 세팅을 하는 순간 눈에 빨려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등에 자신의 번호를 크게 붙이는 것처럼 그의 등엔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진 예명이 붙어있었습니다. ‘철수' 그의 나이트클럽에서의 이름은 철수입니다. 수많은 예명들 중에 왜 하필 그는 철수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요? 그의 좁은 등에 붙은 ‘철수'라는 이름을 본 순간 그 시간 그 분위기와 맞지 않게 드는 감정 때문에 잠시 주춤거렸습니다. 그렇게 잠시 스쳤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철수씨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나이트클럽에서 나를 주춤거리게 했던, 그곳에서 일하는 대한민국의 청년 철수에게서 느꼈던 감정이 뭉클한 아픔이었음을 압니다. 아프기만 하면 너무 아까운 것이 청춘이기에 그를 만난 그 순간 이름표가 붙어 있던 넓지 않은 등과 손님보다 더 긴장한 표정, 그리고 이마위의 땀방울에서 저는 희망을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8년 전이 되었네요, 청년실업률이 10% 대로 떨어졌다는 보도를 보고 잠시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것에는 손을 들어주지는 못하겠습니다. 아주 좋은 일자리는 아니지만 찾아보면 상당수의 일자리들이 있습니다. 나쁜 직업 좋은 직업으로 구분하여 대놓고 편 가르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좋은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암묵적으로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굴절되고 편향된 직업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에 대한 생각이 우선 고려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철수씨가 그 직업을 택한 것이 좋아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택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인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하고 나쁜 짓만 하고 다니다가 나이가 들었고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어쩔 수없이 나이트클럽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밑줄을 그어야 하는 것은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젊은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준 있는 의식으로 굴절 없이 직업을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봐주면 좋겠습니다. 그 시선이 제가 세상에 거는 또 하나의 희망입니다. 삶속에서 뽑아낸 희망만이 삶의 어두운 구멍을 꿰맬 수 있습니다.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바둑이도 같이 놀자~' 한 시대를 같이 했던 영희와 철수. 나이트클럽의 청년 철수가 이름을 빌어 기대하는 다정함을 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포기하지 않는 수많은 철수씨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희망을 뽑아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