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사진= 픽사베이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도 있습니다. ‘역경'이라는 글자를 살짝 뒤집어놓으면 그것이 ‘경력'으로 나의 역사에 남고 ‘자살'이라는 무서운 글자도 순서를 바꾸어 보면 ‘살자'라는 파이팅의 메시지를 줍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역시 이미 벌어진 상황을 안타까워 후회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서 잘 극복하자는 뜻으로 쓰입니다.
몇 해 전 친구랑 저녁을 먹으러 집 근처 식당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혼잡한 시간이라 자리가 있나 싶어서 친구를 앞질러 뛰어가다가 입구에 닫힌 유리문에 쾅~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봅니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영화에 나올 법한, 벽에 던져진 개구리 마냥 유리문에 찰싹 달라붙은 중년의 제 모습, 상상만으로도 충분하게 화끈거립니다. 충격으로 혼미해진 정신을 급히 수습하고 나니 유리문 건너의 세상이 보입니다.
허공에서 오갈 곳을 잃은 수저들, 유리문 건너의 세상은 모두 동작 그만입니다. 심지어 저와 눈을 마주한 손님들의 얼굴에선 “저 여자 괜찮을까?”하는 마음이 읽힐 정도입니다. 그도 그런 것이 뛰어오다 부딪쳤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태의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문을 다소 원망스러운 듯이 밀고 들어가 정지화면의 사람들에게 조용하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그러곤 주변을 한 바퀴 둘러 걱정스런 눈초리들에게 한마디를 더 덧붙였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모 개그 프로를 패러디 한 셈이 되었지만 불쑥 나온 개그 본능이 얼음 땡 놀이를 유쾌하게 끝내버렸습니다.
곧장 식당 사장님을 찾아가 유리문이 너무 깨끗한 게 문제라는 말도 안 되는 타박을 늘어놓고는 그림이라도 하나 붙여두면 좋지않냐며 외려 안전에 너무 무심한 것 같다는 잔소리까지 더했습니다. 괜한 머쓱함에 한 소리하고 얻은 달걀 하나로 연신 얼굴을 문지릅니다. 놀란 얼굴로 뒤이어 들어온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애써 웃음을 참는 얼굴로 저를 바라봅니다. 달걀을 문지르며 욱신거리는 아픔을 잊기 위해 얼른 술을 마셔야겠다는 제게 술을 따라주던 친구는 급기야 참고 있던 웃음을 빵 터트립니다. 친구의 웃는 모습을 보니, 순간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이렇게 세게 부딪친 적도 처음인데다 멍든 얼굴에 달걀 마사지를 한 적도 없으니 이도 처음입니다. 이 새로운 경험들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제게 친구는 충분히 민망한 상황인데도 손님들에게 “놀라셨죠?”하고 묻던 제가 더 신기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날 그 시각의 그분들은 식사하시는 내내 제 얘기를 좀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그랬었던 적이 있었노라고 소심한 고백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날의 상황들을 복기하자니 복잡하고 민망한 머릿속과는 달리 그 틈을 실실거리며 비집고 나온 웃음이 입가에 걸려버립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얼굴의 옆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쳤다면?' 생각만으로도 납작하게 내려앉은 코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이 되어 온몸이 움찔합니다. 퉁퉁 부은 코로 힘든 숨을 쉬며 엉켜버린 스케쥴을 고민하며 칩거 생활을 하고 있을 제가 보입니다. 멍 자국은 메이크업만 살짝 신경 쓰면 그다지 티도 나지 않으니 ‘이 아픔이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고 행복이구나~' 하는 불쑥 나타난 행복감에 모든 골치 아픈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의 힘을 이야기 합니다. 누구나 한번 씩은 경험했을 긍정의 힘, 굳이 거창한 곳에서 찾지 않아도 일상속의 신변잡기적인 소소한 생각의 변화는 놀라운 행복감을 만들어 냅니다. 제겐 깨끗한 유리문 덕분에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지는 놀라운 경험의 페이지가 또 하나 늘었습니다. 주변의 상황을 모두 바꾸려면 너무 힘이 들지만, 겨우 마음 하나를 바꾸니 이렇게 행복해 집니다.
행복은 무지개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진리, ‘남'도 ‘님'으로 만드는, 죽을 것 같은 마음을 살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는 것도 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소소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진리가 참 대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