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아이들은 서로의 사정을 안다

담원의 엽서 Vol.2 postcard028

약한 아이들은 서로의 사정을 안다


담원 글 그림 글씨


요즘 공방에 밥먹으러 오는 아이들은
이 동네 고양이들 중 최약체들이다.

피부병과 구내염으로
온 몸이 딱지투성이에 침을 흘리는 만식이.
앞발이 잘려나간 애기엄마 삼색이.
싸움도 못해, 성격도 소심한 체다아빠 치즈.
오늘은 어쩐 일로 셋이 같은 시간에
밥을 먹으러 왔다.

누구하나 짠하지 않은 녀석이 없으니
싸움이 나서 굶는 애가 생길까 걱정했는데
삼색이가 제일 아픈 만식이에게
밥자리를 내어준다.

엄니가 급히 밥자리를 두개 더 만들어 주셨더니
셋이 사이 좋게 각자 자리에서 밥을 먹고
평화롭게 잠시 쉬었다가 떠났다.

심지어 그 소심한 치즈가
만식이에게 다정하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건강한 아이들이 모이면
매번 목숨걸고 싸우곤 하는데....

약한 것들끼리 조용하게 밥자리를 나누는 걸 보고 있으니
그렇게 짠하고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더라.

인간 세상에도 종종 있는 일이긴 하다.
힘이 있지만 사수와 점령을 택하고
가진 게 없지만 그 어려움을 알기에 지나치지 못하고 없는 중에 나눔을 택하는 그런 사례들.
뭐, 각자의 선택이니 남의 것을 약탈하지 않는 선을 지킨다면 베푸느냐 마느냐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 고양이들은 너무 기특하고 예뻤고, 더 맛있는 걸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밤은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 돕는 존재들에게 복이 있기를 기도해본다.

#약한것들을위한기도 #고양이들아_오래살아
#내일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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