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도 근거가 필요해

담원의 엽서 Vol.2 postcard052

희망에도 근거가 필요해

작년 이맘 때 이시간도 아마 나는 그날의 엽서에 무얼 쓸지 고민하며 책상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니는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만큼 나를 소진 시켰던 슬픔이

처음에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고생으로 점철된 짧은 묘생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날 마당을 찾아온 가엾고 어리고 착한 고양이들.

현실을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했지만

마음이 기우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결국 거두지도 내치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며

밥만 잘 챙겨주고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과 공생할 수 있을거라고

근거없이 희망적인 생각만 했다.

마치 옛날 영화를 보듯이.


옛날 영화에서는 약자가 위험에 처할 지언정 죽어나가지 않았다. 주인공이나 또 다른 영웅이 나타나 구해주고 위기를 모면했다.

약자는 허망하게 희생된다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건 터부였다.


하지만 요즘 영화는 많이 다르다.

약자가 제일 먼저 죽는다.

어린아이도, 임산부도, 노인도, 동물도

몸부림 한번 제대로 치지 못하고 바로 죽는다.

주인공도 마냥 정의롭고 바르지 않다.

편법도 사용하고, 악당의 방식도 마다않고 사이다를 날려준다. 그래야 이길 수 있으니까.

불편한 진실을 더 이상 가리지 않는다.


고양이들을 잃고 무너졌던 마음의 밑바닥에는

같은 맥락의 쇼크가 있었다.

착하고 어린 아이들이니까 나쁜 일 같은건 당하지 않을 거야 따위의 근거없는 희망.

내가 사랑과 성의를 다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안전할거야 따위의 미적지근한 선의.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지켜내지 못한다는 현실.

이어서 우리의 삶도 길고양이와 다를 바 없다는 각성.


지키고자 한다면 어정쩡하고 미적지근하게는 안되는 거였다.

치열하고 뜨겁게 맞닥뜨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는 맞는 답이지만 반쪽짜리 답이다.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면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막연히 잘 될거란 생각만 하고 있으면 희망이 썪어 망상이 되버린다.


오늘 하루에만도 희망과 절망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갔다. 절망에 머물지 말자고 매 순간 상기해보지만 아직 나의 희망에는 근거가 부족한 탓이겠지.


아직은 뼈대만 앙상한 나의 희망.

근거를 거저 주워 올수 없으니

쉼없이 움직여 구체적 모양새도 만들고

단단히 세울 토대도 마련해 보련다.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담원글 글씨


#희망에도근거가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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