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도 걸음걸이도 다 달라요

담원의 엽서 Vol.2 postcard086

벌써 옛 일이 되었지만 2008년에

산티아고 길을 걸었는데

먼 거리를 긴 기간 동안 걷는 여정이다보니

그 길을 걷는 사람들 중 다수가 발병이 나곤 했다.

물집이 생기고, 근육통이나 족저근막염,

염좌, 발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와 나는 너무 체력이 바닥이라

다른 잔병치레는 많이 했었지만

하루에 걷는 거리가 아주 길지 않아서

의외로 물집 하나 없이 완주를 했었다.


중간에 만났던 갓 스물이 된 독일소녀가 있었는데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함께 걷고 있었다.

그녀는 발에 물집이 생겼던 것을 제대로 관리 못해서

동전보다 더 커졌던 물집이 터져서 빨간 생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감염이 있는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걱정한 친구들이 하루의 일정을 미루고

그녀에게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했는데

의사의 처방은 '혼자 걸어라' 였다.

그녀는 즐거운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무리하게 그들의 보폭과 체력에 맞추어 걸었고

그게 탈이 난 원인이기 때문에

이 길을 마지막까지 걷고 싶다면

회복하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컨디션에 맞는 속도와 거리만큼만 움직여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매우 낙심해 돌아온 그녀는

그날 한나절을 매우 우울해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불필요한 짐을 싸서 집으로 보내 무게를 줄이고

그날 밤 작지만 즐거운 파티를 열어 친구들과 작별을 했고

며칠 더 쉬었다가 상처가 나아지면

혼자서 끝까지 완주를 해보겠노라고

기특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위인들의 삶, 셀럽들의 별 같은 생활을 보거나

에너지 넘치며 나아가는 주변 사람을 보면

왠지 나도 속도를 높여 쫓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때로는 그런 자극이 게을러진 내 걸음을 일깨워

좀 더 좋은 여정을 가도록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좋아보인다고 무턱대고 쫓아나가다간 탈이 나기도 한다.


그때 그 독일 소녀가 마지막 까지 완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나는 남들 평균 34일에 걷는다는 그 길을

60일이나 걸렸지만 결국 도착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얻고싶었던 것들을 넘치게 얻었다.


사람은 각자 보폭도 걸음걸이도 다 다르다.

알고보면 각자 여행의 목적지도 다 다르다.

자신의 길을 자신의 보폭대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각자의 정답이다.


#의사의처방_혼자걸어라

#너의보폭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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