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

요즘 일주일에 한번 꼴로 밥을 먹으러 가는 식당이 있다.


가성비도 좋고 반찬도 잘 나와서 그쪽을 지나는 일정이 있으면

꼭 들러서 먹고 가게 된다.


그런데 맛도 양도 좋은 식사 메뉴를 제치고 늘 기억에 남는 건

후식으로 자유롭게 떠먹게끔 준비해 둔 식혜다.


식당의 한쪽에 마련된 냉면 육수통 뚜껑을 열면

깊숙한 원형의 내부 가장자리를 타고 유백색의 살얼음 테두리가 보이고

손잡이가 긴 국자로 휘~ 하고 가볍게 저으면 잘 삭은 밥알들이 떠올라서

식혜가 도는 방향을 따라 와~~하고 (이건 그냥 마음에만 들리는 소리) 몰려 다닌다.


쌓여있는 종이컵을 두개 뽑아서

커다란 국자 속의 식혜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도록

최대한 집중해서 부어넣고 넘치지 않도록 적정선에서 단호하게 끊는다.


이 집 식혜는 아주 깔끔하고, 당도도 적당한데도, 잘 삭은 맛이 그럴듯하다.

엄청난 특별함이나 끝장나는 강렬함이 없는데도 내가 먹어 본 식혜 중에 최고다.

이게 식혜의 표준이지 라는 느낌이랄까?


어쩌다보니 식혜 예찬을 해버렸지만 평소에 식혜를 엄청 좋아하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있으면 잘 마시긴 하지만 일부러 사는 일도 거의 없는 것 같거든.


서론이 길었다.

요즘 이 식당을 자주 가면서 식혜를 자주 마시다보니

식혜를 좋아하던 옛 지인이 갑자기 떠올랐다.


식사량이 많아서 매 끼니마다 밥 네 공기 정도는 뚝딱 먹었던 지인.

회사에서 제공되는 식사가 있음에도 양이 부족하니 도시락을 싸오곤 했다.

보온도시락의 반찬통에는 약간의 밑반찬, 밥통과 국통에는 모두 밥이 들어 있었는데

얼마나 눌러담았는지 뚜껑을 열면 이미 떡이 된 밥의 반이 뚜껑에 붙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농담으로 이거야 말로 zip밥이라고 뻘소리를 하곤 했었고.


그렇게 최강의 밀도를 자랑하는 식사를 마치고

음료수라도 먹는다하면 그의 원픽은 캔 식혜였다.

얼마나 지극한 밥사랑이었던지!


가장 인상적인 건, 차안에서 식혜를 먹을 때였다.

차안에서 캔 식혜를 먹을 때면 늘 놀라운 기술을 보여줬다.

마지막 한모금을 남기고는 캔은 잘 돌려 흔들어서 밥알이 다 떠오르게 한 뒤

운전석의 레버를 당겨 좌석을 완전히 눕히고 떠오른 밥알이 가라앉기 전에 원샷을 하는

이른 바 고급 기술이었다.

이것은 잘 짜여지고 숙련된 기술로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모든 동작의 맺고 끊음에 절도가 있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문제라면 마무리 동작이 뭔가 개구리 같았던 것 정도.


한때는 매우 친하고, 또 내가 일방적으로 많은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았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도 변하고 거주지도 멀어지고 등등의 흔한 이유로 소원해져서 지금은 왕래가 없다.


아직도 그 사람은 여전히 식혜를 좋아하려나.

잘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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