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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May 04. 2018

이방인이라서, 여행을 한다.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2016년 6월 27일에 썼던 글을 곱씹으며 2018년 4월 24일에 다시 씀.


 여행은 쉽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이 없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는 무력감을 맛보고, 내가 외지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5분이 걸리는 길을 찾아가는 것도, 지하철 티켓 하나를 끊는 것도 나에게는 30분이 넘게 걸린다. 빠르게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20kg이 넘는 캐리어를 옆에 두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자리에 계속 멈추어 서 있다. 그리고 나는 무력감을 맛본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차갑게 느껴지던 현지인들의 시선에 기가 죽어, 1시간 반쯤을 맛없는 바게트를 뜯으며 걸어 다니다 숙소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유로 2016'에 들떠 카페나 레스토랑에 모여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지친 마음으로 숙소 계단을 올라가 열쇠를 찾아 문을 열으려 하는데 열리지가 않았다. 숙소의 문은 독특하게도 열쇠를 '탁' 소리가 날 때까지 두 번을 돌리고 다시 반쯤 열쇠를 돌려야 열리는 문이었는데, 두 번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글쎄 도저히 나머지 반절 정도가 돌아가지 않았다. 30분이 넘게 쇠 냄새가 나는 열쇠와 씨름하다 털썩 주저앉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또다시 무력감을 맛본다.

이렇게 돌려보고, 저렇게 돌려보고, 문을 밀어도 보고, 계속 반복해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 분이 한없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꼭 그게 내 앞에 닥친 상황 같았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비단 문이 열리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내 앞에 닥친 시간과 상황 같았다. 


 "비평의 이미지"라는 책에, 여행을 가면 우리는 특별한 종류의 우울감을 맛본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현지 지식의 부족을 깨닫게 되며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그 세계의 문화를 모른다는 사실을, 무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당황하게 되고 또 우울해진다. 


 여행은 쉽지 않다. 우울감에 한 번 휩싸이는 순간 꿈쩍도 하지 않는 문이 계속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게 언어든, 그 문화에 대한 무지든,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지치게 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문은 분명 움직이고 열린다는 것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30분이 지나고 또 10분이 지나고, 계속해서 열쇠를 가지고 씨름한 끝에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우울감이 사라진 후 즐거움이 찾아온다. 나는 이방인이고 외지인이지만, 그래서 여행의 처음은 쉽지 않지만, 낯설기에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낯섦을 찾아서. 우리가 계속 여행을 하는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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