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이미지 출처: https://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joseph-mallord-william-turner-the-fighting-temeraire
위 작품은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로 알려진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이다. 그림의 왼쪽을 보면, 과거 영국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전함 테메레르가 어딘가로 이끌려가고 있다. 테메레르를 끌고 가는 것은 증기선이다. 배의 오른쪽에는 하루를 마무리짓는 석양이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있다.
영국은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것은 곧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증기선에 의해 테메레르가 끌려가는 모습은 과거의 영광과 화려함을 지닌 테메레르가 더 이상 그 자리를 가지고 있을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영화 <007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가 예전과 같지 않음을 시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로의 교체를 나타낸 것이다.
이 작품을 보고 생각난 영화가 있다. Clouds of Sils Maria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터너의 작품이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결이 조금 다를지 몰라도. 터너의 그림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은 그 작품이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것이 새로운 영광을 누릴 것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다. 그것만을 가져와서 계속 글을 써보자면,
이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의 섬세한 연기가 정말 아름다운 영화다. 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젊었을 적, 연극에서 '시그리드' 역을 맡아 세계적인 배우가 된다. '시그리드'는 자신의 직장 상사 '헬레나'를 유혹하여 그녀를 감정적 절망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캐릭터다. 20년이 지난 후 마리아에게 한 제안이 들어온다. 그것은 과거의 '시그리드'였던 그녀가 '헬레나'가 되어 연극의 리메이크에 출연해달라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영원히 '시그리드'로 남고 싶다는 마음에 출연을 거절하려고 하나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후 실스마리아라는 지역에서 매니저인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과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마리아는 자신이 '헬레나'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헬레나 역의 연기를 하면서도 그녀를 증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계속해서 과거의 자신과 싸운다. "나이가 든다는 것"과 새로운 (젊은) 배우에게 시그리드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은 겹쳐진 채 마리아에게 다가온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신이 나이가 들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도 비참한 일로 여겨진다. 자신의 빛나던 젊음의 모습, 어쩌면 오만했던 젊음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리아는 처절하게 거부했던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말로야 스네이크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받아들인다.
이 영화에서 마리아는 너무나 아름답다. 오만한 젊음을 어울리지 않게 놓고 싶어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도, 발렌틴과 연극 연습을 하면서 화를 내는 모습도, 시그리드 역을 맡게 된 죠앤을 질투하는 모습도, 헬레나가 된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도,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받아들인 후 친구를 위로하는 모습도 다 인간적이고 아름답다.
치열하게 싸우는 그녀는 아름답다.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 그녀들에게, 모든 마리아들에게, 미래의 나에게, 당신의 현재는 서글픔보다 빛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비참하고 서글픈 것이 아님을, 당신의 느끼는 초라함은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