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정해진 것들이 낯설어지거나 이미 익숙해진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어느 정도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낯섦이나 생소함 등과 같은 감정은 정해진 것들이나 익숙한 것들과 갑자기 분리되는 경험이 생길 때 엄습해오는 불편한 느낌입니다. 이 분리를 경험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일단 고독해집니다. 익숙함을 공유했던 주변의 연결망과 갑자기 끊어지고, '우리'에서 혼자만 벗어나 '이탈'하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대개 생각의 결과들을 믿음의 체계로 바꿔서 그것을 신봉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믿음의 체계를 가지고만 세상과 접촉하는 것이지요. 이때 인간이 상실하는 가장 큰 자질이 바로 '예민함'입니다.
익숙함에 갇혀 있으면 절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습니다. 익숙함에 갇혀 있으면, 궁금증이나 호기심도 발동되지 않아 질문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최근, 최진석 교수님께서 쓰신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있다. 위 내용은 세 번째 챕터에서 발췌했다.
이 책은 필자가 철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부쉈다. 철학은 철학자들이 남긴 지식을 공부하고 숙지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 이론을 네모 반듯하게 알고 있다고 '철학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삶 자체를 철학적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은 철학을 하는 것이다. 즉,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시선의 높이, 그 방법에 동참하는 능력을 키워서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독립"이라 말한다.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질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용기를 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선물이 바로 독립이다. 세상과의 불화를 자초하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철학을 할 수 있다. 저자는 버드문트 러셀의 말을 인용한다.
사고는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것, 파괴적이고 가공할 만한 것이다. 사고는 특권과 기성 제도와 편안한 습관을 무자비하게 다룬다. 사고는 무정부적이고 법률로 제어할 수 없으며 귄위를 중시하지 않고 여러 세계를 거치면서 정교화된 지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고는 지옥을 들여다보고 지옥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고는 인간을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에 둘러싸여 있는 희미한 알갱이로 본다. 그러나 사고는 마치 자신이 만물의 영장인 듯이 확고하고 당당하게 처신한다. 사고는 거대하고 재빠르고 자유로우며, 세계를 비추는 빛이며, 인간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존에 있는 모든 합리성으로부터 이탈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이다. 정언명령을 뒤흔들 용기이다. 옳다고 믿어지는 것들에 대해 전면적인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용기이며, 고립될 용기이다.
예민함과 불편함도 용기다. 독립과 예민함이 역사를 바꾼다. 사람들은 이탈한 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 예민함을 느끼고 그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묵인해 왔던 것에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예민함이 역사를 바꾼다.
우리는 어디를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