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당신이 옳다'를 읽고
그때, 돈을 벌러 경기도 단원구에 있는 건설현장에 찾아갔다.
그즈음 나이가 많았던 늦깎이 대학 선배에게 서울에 술집에서 웨이터로 일을 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었던 상태였고, 세계여행을 앞두고 목돈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목돈을 벌 수 있다는 '숙식 노가다'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단원구 안산에 위치한 xx건설에 전화를 걸었다.
일급은 13만 원, 숙식제공, 반지하 투룸에서 3명에서 지낸다고 했다.
20일만 일해도 x 13만 원 하면 260만 원, 5일 더 나가면 65만 원을 더해서 총 325만 원이었다. 괜찮은 수입이라고 생각했고, 대학 선배가 말했던 웨이터일 역시도 수입이 아쉽지 않았다.
대신 밤낮이 바뀌고, 손님 접대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술을 많이 나른다고 했다. 손님들이랑 직접적인 접촉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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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건강한 일상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건설현장을 택했다. 허나 인터넷에 숙식 노동을 검색해보니, 그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뭐랄까, 거친 남자들의 집합소라고 해야 하나? 그런 이미지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 결심이 물러질까 봐, 머리를 밀기로 결심한다. 내가 빡빡이가 되면 웨이터 일이든 다른 돈벌이 수단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망칠 퇴로를 스스로 막아버렸던 것이다.
그러한 의지의 발현으로 계획했던 7개월 동안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상대적으로 나이는 어렸지만, 빠릿빠릿하고 열심히여서 잘 배웠고, 4-5개월부터는 도면도 들여다보며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셌다.)
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26살이었고, 지금도 모르지만 그때는 세상을 더 몰랐고 모르는 만큼 두려운 것,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을 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망설임,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나의 감정 - 내 존재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고, 감정을 주목하기보다는 '이겨내야 해'라는 마인드셋으로 나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사석에서 누군가에 했을 때 누군가는 나보고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나라는 사람이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소간 먹먹해졌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이겨 내야 해',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을 퍼부어야 해'와 같은 신념 혹은 가치관을 강화하는 다짐들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살아왔다. 억압과 인내로 점철된 삶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결과를 내고 성취를 하는 것에 최적화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였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감정에 대해서 주목하고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26살의 나는 겉보기에 씩씩하고 용감했지만, 한 꺼풀을 벗기고 속마음을 들여다봤으면 얼마나 망설이고 두렵고 무서웠을까?
거기서 남자를 그려보라고 했고, 그 남자를 그렸고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을 투영했다. 그리고 상담가가 물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세요?'
'....'
그리고 여자를 한 명 그리라고 해서 그렸다. 그래서 나는 한 여자를 그렸고 전 여자 친구를 반영했다
'지금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여자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왜 나는 나 자신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은 걸까? 정작 나 자신은 싫어하는 걸까?
늘 가치관이나 신념만을 말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몰두를 넘은 매몰된 삶을 살아가는 그 남자와 나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즐거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최근 들어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하나의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여러 이유 중 깨나 중요한 조각 하나를 찾았다..라는 느낌.
이 책을 읽고,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안산에서 숙식 노동자로 일 했던 7개월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아왔던 환경과 스쳐갔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들에게 내가 뱉었던 말과 행동들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이지 신념과 가치관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감정이라는 것은 덮어두고 외면하며 지금껏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라도 조금씩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도 물으며 조명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얼마나 보람찬 일을 했니?'가 아니라, '오늘 마음이 어땟어?'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밤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