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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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부터 엔딩크레딧까지 월터라는 인물이 조금씩 성장하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요즘 삶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영화 속 Life 잡지의 모토도 깨나 큰 울림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누구보다 세상이 쥐어준 규칙을 잘 따르고, 준수하며 경주마처럼 나름 공부를 썩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 허나 대학을 입학하던 무렵부터, 내가 공부에 쏟았던 시간과 에너지가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은 의혹감이 들었고 차라리 그 시간에 좋아하는 것들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내 삶이 훨씬 다채로웠을 것이며 그 인생이 잘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는, 세상이 쥐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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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중에 흥미가 가는 과목은 수업시간에 열심히 질문도 하고 듣지만, 시험은 치지 않았다. 시험 따위는 고등학교 때 의미 없이 공부하고 시험치 던 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수험생 시절의 실수(= 세상이 쥐어준 길을 아무런 의심 없이 열심히 밟은 것)를 반복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자퇴를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오늘 감상문을 쓰고 있다.
근데 참 사람이라는 게, 고등학생 수험생 시절의 그 몰두했던 경험이 어찌나 싫었던지 세상이 주어진 것이 아닌 나의 길,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인생의 모든 사건 사고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라는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과 그 후의 해석에 따라, "세상이 주어준 대로 살지 말고 나만의 길을 주체적으로 열정적으로 사는 삶을 살 거야. 누군가 바보라고 해도, 난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라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졌고, 그 강해진 생각만큼이나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열정적으로 살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뭔가 삶을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무너지고, 결핍이 생기고, 그 결핍이 생긴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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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삶을 주체적이고 열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찾고, 열심히 매진하고 살려고 했지만 인생이란 게 늘 그럴 수는 없었고, 나는 또 무너지고, 결핍되고, 그런 무너진 내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담배 - 음란물 - 게임 - 자극적인 영상에 빠져서 삶을 살기도 했다. 왜냐면 무너진 나 자신을 대면하기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신념과 가치관이 생겨서 분명 좋은 점들도 있다. 가치관이 뚜렷해지고 그에 따라 선택도 쉽게 내릴 수 있고, 주체적인 삶이 주는 열정도 느끼면서 뜨겁게 살아갈 수 있다.
허나, 뚜렷하고 강해진 가치관만큼 그 가치관에 못 미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곤 했다. 나는 열정적이고 주체적인 나 자신만을 받아주었던 것이다. 생각이 강해지고 견고해질수록, 그 반작용도 강해지는 것이었다. 일장일단이다.
요즘에 빠져있던 생각들, 방황하며 했던 생각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연관이 있냐고 물으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다. 어차피 영화도 삶도 주관적으로 자기 쪼대로 해석하고, 만들어가는 것 아닌가 싶다.
나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본 후에 이러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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