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500명과 대화하며 느낀 것
친구들이랑 삼삼오오 모여 밥도, 술도 먹으며 시간을 보낸 후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허함과 헛헛함을 느낀 경험이요. 금방까지도 왁자지껄하게 함께였는데 홀로가 됐을 때 금세 속이 텅 빈 느낌이 드는 경험요.
저는 대학생이 되고 처음 이 느낌을 느꼈었거든요? 제가 친구들이랑 못 어울리고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친구들하고 시간 보낸 후 혼자 버스나 지하철에 오르게 되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가 이미 부른데도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찾게 되거나, 자극적인 영상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지인들과 보낸 시간이 충분히 내적으로 공감받으면서 교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가십거리 이야기'만' 계속했다거나, 겪은 일에 대한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그 이야기의 내막에 있는, 그래서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고 이런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식의 대화가 오가지 못한 거죠.
저는 지난 4년간 500명이 넘는 사람들하고 3시간씩 깊은 대화를 나눠보는 경험을 했는데, 거기서 이 공허함을 해결할 여지를 찾았습니다.
1. 사람들은 긴밀한 소통과 공감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충족할 곳이 생각보다 없다.
-이건 친구가 많고 적음, 애인의 유무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2. 대화를 잘하려면 공감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선입견
-공감은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 되어지는 거예요. 공감을 한다(능동태)가 아닌, 공감이 된다(수동태)라는 말이에요. 단지 그 대화로 가는 방법을 몰라 공감하는 나 자신을 본 적이 없는 거죠. 그래서 결국 스스로 공감 능력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또 대화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헛헛한 게 아니라, 반대로 은은히 차오르는 충만한 감정을 가지게 돼요. 생물학적으로는 세로토닌이 분비된다고 하나요.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대화에 참여하던 분들도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던 그 자리를 많이 기대하셨어요. (참고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4개월 한 시즌에 2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유료 커뮤니티 였습니다.)
첫째, 진중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의 속마음 또 너의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무거워지고, 때로는 정적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이런 공기의 변화를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대화가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굳이 속마음을 이야기해서 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냐는 태도죠. 심지어는 그런 사람은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진지충으로 놀리기도 하고요.
둘째, 반복되는 충고/조언/평가/판단을 통해 체념해버린 사람들
속에 있는 고민이나 내밀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너가 아직 그걸 몰라서 그러는데, 그건 너가 잘못한 거야’와 같이 원치 않는 평가를 당했거나, 섣부른 조언을 당하는 등, 그런 상황을 계속 겪어서, 더 이상 그런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경우입니다.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우리는 아끼는 마음에-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섣불리 충고나 조언, 심하게는 판단이나 평가를 하게 되죠. 하지만 정작 그런 평가를 받는 당사자는 어떤 객관적인 정답을 기대하고 말을 한다기 보다, 단순히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에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심지어 말하는 본인이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마음 깊은 곳에 자신만의 정답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 째, 서로가 마음이 닿는, 내밀한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내가 느낀 감정과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것들이 존중받고 오롯이 받아들여지는 대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대화하는 것에 서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자신이 가진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고, 반대로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 그 생각에 대해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그 생각의 배경이 되는 그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대해서 되묻는 것은 낯설어해요. 그리고 되묻는 게 실례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즉,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 대화가 통하는 과정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대화의 본질을 이해하셔야 해요. 대화가 잘 통하는 건 둘 중 누군가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게 좋고, 말주변이 좋아서가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 들어주는 역할을 잘 해서, 대화가 잘 통하는 거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셔야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대화는 들어주는 사람이 주도한다는 말이죠.
그때 충. 조. 평. 판하지 말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이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질문을 해보세요. 상대방이 느낀 감정, 생각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경청하게 되면 상대방은 막힘없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을 억지 노력으로 공감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서사(배경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공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실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과 정서적인 유대가 생겼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면 더 이상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헛헛하고 공허한 느낌은 들지 않을 겁니다.
주변에 내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고 또 상대방도 어떤 일이 있을 때 저에게 이야기를 터놓고 서로 관계를 이어가요. 이런 관계가 돈이 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말 한두 마디 때문에 때로는 인생이 살만한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아요.
아차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나 역시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을 끊더라도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도 넌지시 해보세요. 억지로 내 욕구를 참으면서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 그거 노동이지, 대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