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기반 커뮤니티 '문토' 앱을 통해서 꾸준하게 모임을 개설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개설하고 진행하는 모임에는 항상 지키려는 것이 있다.
나이나 학벌, 지위를 밝히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리로 가득 찬 대화보다는, 그 주제에 대한 나의 감정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대화를 한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충조평판을 하기보다는, 어떤 마음에서 - 그리고 어떤 경험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열린 태도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모임에서는 디지털 제품 사용이 금지된다. 모임 시작과 동시에 디지털 제품은 따로 보관되며 모임이 진행 중일 때는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내 모임에는 '디지털 안식일'이라는 제목이 항상 들어간다.
한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성수동 골목골목을 핸드폰 없이 6시간 동안, 오롯이 오감을 이용해서 걷는 모임을 진행했고 사람들의 반응 역시도 좋았다. 다른 모임들 보다 좋아요 숫자도 높았고, 실제로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그걸 어떻게 아냐면, 모임 시간 6시간이 끝나도 바로 가는 사람이 없었고, 짧게는 총 8시간에서부터 길게는 12시간 동안 계속 모임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날씨가 걷기 힘든 만큼 더워져서 7화 이후로는 <걷기 편>은 멈추고, 이제는 디지털 안식일 <영화 편>을 개설했고 이번 광복절날 참여자분들과 모이기로 되었다. 모임 참여 비용은 15,000원이고 총 8명이 모인다. 참여비는 공간 대여비와 내가 진행하는 진행비, 모임 준비 수고비(?)로 쓰인다.
나는 부산에서 독서기반 커뮤니티를 4년 동안 운영했다. 회원이 적었을 2~3년간은 대부분의 모임에 참여해서 모임의 진행자(모더레이터)로 들어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기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속에 있는 이야기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진행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보면 모임 전문가다.) 그렇게 모임을 운영하고 관리하다 보니 부산에서 유료 독서모임 중에서 가장 비싸지만, 가장 많은 회원분들이 참여하기도 했다.(한 시즌 4개월에 199,000원이었고, 회원은 150명이었다.)
아무튼 위의 이야기를 한 것은 자랑하기 위함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토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모임장으로 커리어를 쌓아왔고 실력도 있다는 말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셌는데, 나는 이번에 <디지털 안식일 : 영화 편>을 개설했고 이번에는 프라이빗한 영화관에서 '오만과 편견'을 보기로 했다. 4시간을 대관했고, 영화를 보고 [ 무비 토크 ]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항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서 아쉬웠거나 혹은 나눌 수 있더라도 그냥 피상적인 이야기(재밌었다, 별로였다)만 나누게 되는데 나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모임을 이끌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그 감정은 어떤 개인적인 경험과 배경에서 나왔는지, 그리고 그 영화를 토대로 내 본연의 생각과 가치 판단은 무엇인지 등등.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화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리고 호스트로써 가장 중요한, 모임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과거에 운영했던 독서 기반 커뮤니티에서도 영화 역시도 컨텐츠로 선정되기도 했고, 영화 모임도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랑 지금 문토에서 여는 모임과의 큰 차이는 '아무나'가 다 참여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다.
예전에 운영했던 독서(영화) 기반 커뮤니티는 높은 비용과 4개월간 진행되는 기간, 그리고 감상문(400자 이상)을 홈페이지에 제출하지 않으면 멤버십 비용을 냈어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런 높은 진입장벽이 필터링 역할을 해서 '아무나'가 참여할 수 없었다. 모두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 정해진 누군가를 위한 모임이었고 촘촘한 필터링을 거쳐서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모임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모임의 퀄리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모임은 좋은 참여자(의도와 목적에 부합하는)들이 모이면, 좋은 모임이 될 수밖에 없다.
문토에서 여는 모임은 위와 같은 촘촘한 필터링이 없어서 모임의 퀄리티를 보장하기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임 소개 글을 잘 쓰는 것이다. 어떤 색깔의 모임이고, 어떤 방향성을 가진 모임인지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하는 것이다. 잘 전달을 할 수 있어야, 모임의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신청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모임을 개설했고, 이제 이틀 뒤 광복절이면 모임이 열린다.
4시간이라는 시간, 그리고 일회성 모임이라는 핸디캡이 있지만 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참여 경험을 올리기 위해서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주제에 맞는 질문들을 내 나름대로 선별하고, 준비한다. 그리고 모임 시작 전에 모임의 규칙을 명확히 전달하고,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토대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일반적인 자기소개와는 다르다.(나이, 직업을 공개하지 않고 나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말하는 게 진짜 자기소개가 아닌가?)
그래서 오늘 밤 내가 끄적여 본 질문들은 아래와 같다.
[ 영화 제목 ]
- 내가 생각하는 ‘오만’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 내가 생각하는 ‘편견’이라는 단어는 어떤 느낌/의미인가요?
-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한다고 하는데, 내가 오만하다고 느껴진 적이 있나요? 아니면 나는 타인- 으로 부터 사랑받기 힘든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 편견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편견이 있나요? 혹은 타인이 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나요?
[ 사랑 ]
-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떤 느낌인가요?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요?
- 사랑이라는 걸 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어떤 마음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원했나요?
- 내가 이때까지 했던 사랑은 어떤 부류의 사랑이었나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사랑의 모습은 어떤가요?
- ‘참 사랑하길 잘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 시간을 돌려 과거의 헤어졌던 연인과 만나게 된다면, 달라지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 육체적인 사랑 VS 정서적인 사랑, 나의 비율은 몇 대 몇인가요?
- 나는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인가요?
[ 인생 ]
-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 내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준 사건/사람이 있나요?
- 앞으로의 내 인생을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 내 인생에서 놓아버리고 싶은 것이 있나요?
- 내 인생에서 이것만은 놓고 싶지 않은 것 있나요?
- 내 인생 이것만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게 있나요?
[ 결혼 ]
- 내가 만났던 연인 중에서 한 사람과 꼭 결혼해야 한다면 누구랑 결혼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무엇인가요?
- 결혼을 하고 싶다면 왜 하고 싶나요?
- 결혼을 하기 싫다면 왜 하기 싫나요?
참여자분들에게 주제 4가지 ( 영화 제목/사랑/인생/결혼)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하고, 그 주제의 질문 중에서 한 가지에 대해 랜덤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그렇게 참여자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눈도장도 찍고,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영화를 감상할 예정이다. 영화 감상이 끝나면 무비 토크 시간을 가지고, 가벼운 뒤풀이 후 해산한다.
이번 <디지털 안식일 : 영화 편>에서는 어떤 대화들이 오갈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