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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boyhood Jan 14. 2022

신혼일기(新婚日記) #3

오감에 대한 다섯가지 단상


1. 시각

나는 아내와 일본에서 같은 일을 하다 만났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같은 정도로 존재한다. 일본에서 우리가 봤던 풍경들, 갔던 동네들, 걷는걸 싫어하던 아내가 나랑은 곧잘 걷던 거리들. 언제쯤 다시 그곳을 걸으며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을까.


2. 청각

https://youtu.be/EdTs9XiEDG0

도쿄의 그때로 항상 우리를 데려가주는 음악.


같은 노래를 반복적으로 듣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내가 아직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좋은 노래들이 얼마나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내를 만나고 지금까지도 감사한 일이 하나 있다면(하나만 있어서가 아니라 많은데 그 중 하나),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즐거움을 알게 해줬다는 데에 있다. 꽂힌 음악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20번 이상은 반복해서 들어줘야 한다. 처음 5번 정도 까지는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에 몸이 반쯤 꼬이다가 10번이 넘어가면 내가 이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구성하고 있는 포인트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15번 이상 들었을때 처음과는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고, 20번이 넘어갈때쯤이면 그 음악과 장소가 페어링되어 ‘내 인생의 한 순간’ 으로 깊이 자리 잡는다.


함께 휴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음악을 들었던 때가 있다. 그 중 한 곡이 백예린의 ‘Bye bye my blue’ 였다.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일본 도쿄에서의 풍경과 향이 생생하게 기억나곤 한다.


아내는 지금도 저쪽에서 듣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3. 후각

함께 일하던 곳에서는 업무 특성상 손이 건조하거나 자잘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내는 특히 핸드크림을 자주 발랐다. 베리향과 포도향, 그리고 플럼향 중간 어딘가 아주 좋은 향이었다.


3층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도 2층에 그녀가 도착하면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향이었다. 말초신경이 반복적으로 자극되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 바디샵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한정판매하는 ‘Love and Plums’ 향이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겨울에 미리 많이 사서 쟁여두고 쓰고 있다. 정말이지 이 향은 매일 맡아도 항상 그때처럼 설렌다.



4. 미각

내가 해주는 요리를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볼때면 참 행복하다. 그것이 설령 라면일지라도. 세상에서 라면을 제일 잘 끓이는 사람의 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 먹어주는 아내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내가 만든 음식이 아니어도 그런 표정은 종종 등장한다)


5. 촉각

아내는 내 살성(性)이 좋다고 늘 얘기한다. 마치 점성(粘性)과도 같이 내 살이 가지고 있는 살갗의 성질이 좋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감 중 제일 중요한 요소 같은데 살면서 자신의 살만큼 관심이 안 생기는 일이 없다. 이 역시도 상대가 알아봐줄때 빛을 발한다는 걸 아내를 만나고 알게됐다.



본 시리즈는 아내의 검수를 일체 받지 않기로 사전 협의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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