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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창 Dec 31. 2021

김근태 선배와의 인연2

감옥으로 이어진 인연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 김근태 선배를 다시 만난 것은 1990 서울구치소에서였다. 김근태 선배는 오랜 도피와 수배생활끝에 잡혀서 재판을 받고 유명한 고문폭로로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다 이적단체구성죄로 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당시 서울 구치소에는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으로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은  잡혀  있었다. 소련의 멸망과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운동의 진로를 놓고 생각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미행과 감시에 반응하는 긴장들이 떨어져서인지 여하간 웬만한 사람들은  구속된 상태였다. 돌아가신 노회찬의원, 지금은 광주의 국회의원이 되어 계신 당시 전대협의장 송갑석의원, YTN사장을 지낸  있는 장명국대표, 전국빈민연합의 양연수회장, 민주노총의 단병호의장, 이론가로 필명을 날리던 이진경교수, 화가 홍성담. 사노맹 멤버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런 가운데 당시의 서울구치소는 양심수와 정치범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말도 건네고 인사도 나누고 운동도 같이 하는 등 '대화'가 그런대로 가능한 상태였다. 소위 각자의 방에서 통방이라 불리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교도관들이 조금 허용을 해주는 상태이기도 했고, 운동을 같이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방을 배정받고 보니 나는 김근태 선배의 아랫방이고, 이진경교수가 내 옆방이고 해서 세사람은 저녁 먹고 설겆이를 하고 나면 취침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가까워졌다.

더구나 서울구치소내의 정치범들이 구치소내의 인권과 정치범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만든 옥중투쟁위원회가 있었는데, 대표가 김근태선배였고, 나는 선전국장을 맡아 김근태 선배와 상의하여 각종 성명과 입장을 정리해 밖으로 내보내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요즘의 감옥이야 펜도 주고, 신문도 보고 방송도 보고, 이메일도 보내고, 난방도 된다고 하지만 당시는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던 시절이어서 다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권리들이었다. 단식과 감방문차기 같은 방법이지만 그를 통해 수형자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정치범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던 것이다. 당시에도 교도관들의 일반 수형자에 대한 폭력이나 폭언은 일상적이어서  정치범들의 옥중투쟁위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하간 그런 싸움들이 오랜 시간 쌓여 지금은 그 당시 보다 개선된 교정환경이 만들어 진 셈이다. 그런 당시 서울구치소의 풍경은 우리 교정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정치범들의 교무과 점거 농성으로 모두 잡혀서 징벌방에 갇히는 것으로 마감되기는 했다. 얼마 후 다들 이감을 가야 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참 옥중에서까지 쉼없는 분이셨던 셈이다. 갇힌 몸이면서 늘 남과 북의 상황이며 나라의 사정이 어찌 돌아가는 지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보며 늘 나와 이진경교수의 생각을 묻고 하셨다. 간혹 나와 이진경교수는 전민련의 세 선배들이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거론하며 김근태 선배의 심사를 긁어 놓기도 했는데, 지금 그 중 한 분인 장기표대표의 행보를 보면 김근태 선배에게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서 나는 먼저 출소를 했고, 김근태 선배는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후 출소를 했다, 출소하기 전 인재근형수에게서 연락이 와서 김근태 선배가 면회를 함 오라고 했다며 함께 가자 하여 면회를 가게 되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출소를 앞두고 나름의 구상을 갖고 계셨고, 그 일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나는 경실련에 가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물론 당시에 나 스스로도 정치의 영역으로 가게 될 김근태 선배의 구상에 선듯 마음을 싣지도 못했지만 시민운동이라는 영역에서 일하기로 약속한 상태였기에 제안에 응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김근태 선배와의 감옥에서의 인연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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