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플랑크평전. 트위터에서 만난 과학자 김우재 박사의 추천으로 한 10년전쯤 읽게 된 책. 뭐 본인은 누가 읽든가 말든가 별 관심은 없는 분으로 보이긴 하지만^^
연전에 세상을 떠난 선배 한 분은 586들 책읽은 자랑 그만하라고, 잘난 척들 한다고 나무라셔서 최근에는 책을 읽어도 읽었다고 이야기는 잘 안하고 있지만, 이 글은 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것인데, 과거의 오늘 코너에서 불쑥 솟아 올랐다.^^ 가벼이 읽기 시작했는데, 내게는 꽤 생각을 정리하는 책이 되기도 했다.
이 평전은 과학사가 피셔의 저술이다. 피셔의 과학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덕분에 막스플랑크가 오늘날 과학사에서 또 인류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가를 알게 된다. 사회사상을 이해하듯 역시 과학적 발견도 통사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맥락을 알게 되고 그 의미를 조금 더 잘 알게 된다.
유명한 플랑크 상수에 대해 설사 그것이 무언지는 잘 몰라도 한 번쯤 들어 본 적은 있었는 지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고등학교때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여하간 고등학교때 물리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이 평전을 읽고서야 막스플랑크가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발견해 낸 '파동의 에너지는 그의 진동수에 비례한다'는 공식이 고전물리학의 기본을 흔들어 버리는 유명한 공식임도 알았다.
그 자신 고전물리학의 대가이면서 그가 발견한 양자개념은 고전물리학의 토대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를 연 구세대의 막내'라는 위치에 선 과학자가 된 막스플랑크. 그와 동시대에 살지만 그의 발견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까지 나오면서 현대물리학은 우주로 가는 길까지 열어가게 된다.
막스플랑크덕에 우리는 푸른빛의 에너지는 진동수가 많고 붉은 빛은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별의 빛이 가져다 주는 색깔로 우리는 별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빛의 파장과 진동으로 우주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게 된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그러나 그보다 내게는 이런 과학적 발견들이 내가 가진 사유의 방식을 바꾸어 놓은 발견으로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막스플랑크는 뒤늦게 읽었지만, 30년전 읽었던 하이젤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함께 그동안 내가 가졌던 뉴톤물리학에 기초한 사유방식, 엥겔스의 자연변증법과 같은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물리학의 이 발견은 그간 결정론적 사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사회적 인식에 비결정론적 사유의 필요를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파동 아니면 입자라고만 보였던 에너지는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연현상은 기계적으로 정해진 법칙과 구성요소로 움직이고 그래서 관측되고 예측될 것이라는 생각, 일정한 절대적 공간안에 놓여 있다는 생각들이 무너지고 시공간의 상대적 개념과 물질의 움직임이 갖는 불확정성은 기계적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난 물리학을 잘 알지는 못한다. 어쩌다 시간이 좀 나면 그 이후로 이런 책들을 통해 좀 더 물리학의 발견들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하고 있고 짬짬이 읽고 있기는 하다. 30년전 잘 이해도 되지 않는 물리학 용어들을 앞에 두고 책장을 넘겨 가면서 꾸역꾸역 알아 간 물리학의 발견들은 내게, 막 현실로 다가 온 냉전체제의 해체로 인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의 해체와 더불어 결정론적 사유방식 마저 전환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다시 막스플랑크 평전을 읽으며 새삼 그 기억을 되살렸었다. 오늘 페이스북이 그 기억을 10년만에 다시 소환해 준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시대는 앞선 세대에서 누군가 그 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막스플랑크 평전은 30년전 알았던 과학적 발견들 앞에 막스플랑크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책이다.
* 내가 읽은 이 책은 지금은 절판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