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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창 Jun 02. 2023

상상력이 권력을 인수한다

상상력이 권력을 인수한다는 말은 68혁명 당시 프랑스 문화예술인들의 결의안 제목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결의안의 제목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제목 아닐까? 55년 전의 파리는 기존의 사회에 대한 도전적 사유와 행동으로 열기가 가득 찼다. 노동자들의 공장점거에 자극 받은 예술가들이 파리의 오데용극장을 점거하고 ‘미래를 장악해야 한다. 낡은 정부에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창조는 미래의 권력을 움켜쥐는 것이다.’ 같은 구호들로 가득 채웠다.

68혁명은 그 이전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이후의 인식을 가르는 사건이었다. 오늘날 녹색당 같은 생태적 가치에 기반한 흐름과 인권, 개인주의 등 새로운 인식과 가치의 확장, 베트남전쟁, 드골과 처칠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전환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 없이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이 한 문장에 담겼다.


코로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신호


지금 우리는 다시 전환의 시기에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 온 우리 일상의 변화는 직접적이다.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지냈던 장면은 SF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장면이다. 만화나 영화를 통해 상상했던 장면이 현실로 왔다는 점에서 그로테스크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코로나19의 1차 대유행이 시작될 무렵인 2020년 3월 MIT Technology Review는 코로나19는 일시적인 중단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의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This isn’t a temporary disruption. It’s the start of a completely different way of life.) 식당, 관광, 공연, 스포츠, 카페, 영화관 등은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례없는 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통해 직접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지나왔다. 이제 우리는 이미 관중 없는 경기들을 경험했고, 랜선으로 연결하여 공연을 보기도 했으며,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들이 새로운 영화관 기능을 하고 있다. 배달경제는 급속히 성장해서 이제 보편적인 노동형태로 자리 잡았다.


기후위기, 근본적인 삶의 위기


2020년 7월 20일자 타임지의 표지기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단 한 번의 마지막 기회’라는 인상적인 제목을 단 본문의 기사는 기후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일상의 중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미 와 있는 기후위기라는 보다 근본적 위기는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생산과 유통, 소비 등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성장 중심의 발전 체제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가져갈 것을 요구하는 일이다. 넷제로를 만들기 위해 탈탄소계획과 이를 위한 실행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우리 삶의 필수조건들인 주거와 교통, 물류, 에너지, 생산과정, 도시건설 등을 전부 바꾸어야 함을 의미한다. 코로나 19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전환’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디지털이 가져 온 변화

디지털기술이 가져 온 우리 삶의 변화에 대한 흔한 비유로는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를 가져 온 결정적 기술의 하나인 인쇄술을 꼽는다. 자기 나라의 언어로 대중적 출판이 이루어지게 한 인쇄술의 발전은 정보의 소통과 생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절대적 권위를 누리며 중세를 통치하던 주요한 기둥인 성직자들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근대의 질서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지금 디지털이 가져오는 변화는 그 이상을 가져 올 것이라고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다. 미디어 생태계는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고, 노동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플랫폼이라는, 전통적인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 시스템과 연결되어 출현한 노동방식은 기존의 노동법 체계를 흔들고 있다. 배달노동으로 대표되는 플랫폼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동안전과 건강 등 임금과 노동조건은 기존의 노동법으로는 보호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확산은 세계 곳곳에서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권력의 변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권력의 구성방식과 구조가 어떤 변화 끝에 나올 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은 틀림없다.


전환의 시기, 상상력이 권력을 인수한다


앞에 든 변화들은 우리 삶의 패러다임에 근본적 변화를 강제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변화들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변화의 와중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에게 과거와는 다른 사고방식과 태도를 요구한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디지털이 가져 온 변화에 대응하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독점보다는 공유에, 폐쇄적인 것보다는 개방적인 것에, 주장보다는 대화와 협력에, 결과보다는 과정과 실험에, 평가의 기준이 수치보다는 사람, 인간적 항목에 무엇보다 시민과 함께 라는 가치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에 와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들어 내는 시작은 의외로 우리의 삶과 가까운 곳,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도 좋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순식간에 모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연결’된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던 새로운 정부는 이제 1년이 지나면서 슬로건과 달리 반지성주의와 권력을 누리는 자들의 자유라는 담론이 국정철학이 되어 있음을 본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공약파기도 놀랍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오랜 시간 한반도의 위기를 규율하는 분단이라는 남북관계의 ‘전환’을 머리 맞대고 의논하고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 이미 다가 와 있는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의제를 던져 주고 있고, 이는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도전할 때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상상력으로.


*생활정치연구소 목요칼럼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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