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 / 4.02km
장비를 갖췄다. 지금은 장인이 아니니까 장비 탓을 해도 된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풀-세트를 맞추고 싶어 진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장비를 갖췄으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그만둘 수 없다는 배수진(이라고 쓰고 핑계라 읽는다)을 치는 거랄까.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란. 러닝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되었지만 더 오래 그리고 즐겁게 달리기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러닝화정도는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푹신하고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달리면 괜히 기록이 더 좋아질 것 같고 발도 건강하게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그래, 이건 장기적으로 내 건강을 위한 거야! 그리하여 회사 점심시간에 점심도 거르고 러닝화를 알아보러 떠났다.
사실 비싼 건 크게 욕심 없고 적당히 내 발에 맞는 합리적인 러닝화를 사고 싶었다. 미리 찾아본 몇몇 모델을 신어 보면서 예쁘면서도 편안한 러닝화를 결정해 구매했다. 세일까지 하고 있는데 안 살 수가 있어야지! 사실 무언가를 구매할 때 내 성향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나와 잘 맞는 제품인지 수없이 많이 고민하고 다른 것과 비교해 보며 오랜 시간을 두고 구매한다. 그런데 이번 러닝화 구매는 얼른 새 신을 신고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는 조금 성급하게 구매했다. 급하게 먹은 음식에 탈이 난 걸까. 이는 결론적으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문제를 야기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장비도 갖춰졌으니 일단 달려보자.
퇴근 후 '새 신을 신고 팔짝 뛰어'보려 불광천으로 향했다. 가볍게 몸을 푼 뒤 4km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1km를 돌파하는데 페이스가 괜찮았다. 5분 33초. 역대 달린 페이스 중 가장 빠른 페이스였기에 '이게 바로 장비의 효과인가?' 감탄하며 놀라움 반, 기쁨 반의 마음으로 달렸다. 그러나 내 체력은 새로운 장비가 아니었기에 3km부터 호흡과 페이스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5분 후반과 6분 초반을 넘나들며 결국 5분 55초의 페이스로 마무리. 조금 아쉬웠고 더 잘 달리고 싶은 욕심이 들었지만 조급해지지 않기로 마음을 달래 보며 기분 좋게 러닝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갑자기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왜지, 뭐가 문제지?
집에 와서 씻고 발을 살펴보니 오른쪽 세 번째 발가락이 붉은 채로 살짝 부어 있었다. 달리면서도 약간 불편함은 있었는데 그저 새 신발이라 그런 거라 생각하고 달렸었다. 왤까, 나름대로 고민하며 원인을 찾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내 오른발이 왼발보다 약간 크다는 것. 여러 러닝화를 신어볼 때 나는 왼발만 신었고 적절한 사이즈와 편안한 착용감에 바로 구매했다. 게다가 당시에 얇은 일반 양말을 신었었는데 러닝 할 때는 더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신다 보니 오른발과 러닝화가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택을 자르고 달렸기에 교환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네?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러닝 양말을 사야겠군! 그렇게 나는 또 러닝 용품을 검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