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얼마 전 쿠 퍼실리테이션 그룹에서 개최한 '기업 민주주의' 세미나를 다녀왔습니다. 기업 민주주의, 생소한가요? 영어로는 Democracy in Business 라고 씁니다. 말 그대로 기업 내의 의사결정을 민주주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하죠.
기업에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세미나에서 모둠 별로 이 주제를 두고 토론했습니다. 기업 내 의사결정 구조에 민주주의가 도입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러프하게 서로 떠오르는대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회사에 민주주의가 도입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가 둘러 앉은 원탁 테이블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한 두명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됐는데, 이제 모두가 둘러 앉아야 하니 아무래도 만남의 시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한 마디씩 의견을 더하는 것까지 ㅡ 민주주의가 회사에 도입된다면, 의사결정에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반면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이 가능하고, 조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조직원들이 회사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 등 조직에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여러 장점들도 언급됐습니다.
이 모든 걸 뒤집으면 '민주주의가 없는 회사의 모습'이 됩니다. 소수 리더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회사는 의사결정이 빠르지만 창의적인 해결은 어렵고, 조직원들이 도구적인 존재로 취급되며, 회사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됩니다. 소수 리더의 역량이 중요해지고 그 만큼 리더에게 부여되는 책임의 크기도 비례하여 커지겠죠. 책임이 커지면 빠른 결정은 가능할지언정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워집니다.
와비파커와 기업 민주주의
회사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예를 보여준 것이, '와비파커'의 사례입니다.
위 링크에서 설명한 것처럼 와비파커는 "직원이 직접 자신의 업무를 결정하되 경영진의 의사도 반영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프로세스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전 직원이 웹사이트 개편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출한다
(2) 31명의 관리자급 간부들이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에 찬반 투표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마다 '와블스'라는 가치를 매긴다.
(3) 개발팀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아이디어 구현이 완료되면 해당 아이디어에 매겨진 '와블스'를 가져간다.
경영진과 직원이 구태여 한 테이블에 둘러 앉지 않더라도, 양자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프로세스로 정착시킨 좋은 예입니다. 많은 곳에서 운용되고 있는 '사내 아이디어 제안' 게시판과 유사하지만, 일에 대한 우선순위와 작업의 실행을 실제 작업의 실무자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또한 의사결정 시간이 길어져 효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편견을 꺾고, 오히려 업무 효율을 증대시키면서 조직원들의 정서적인 유대감까지 끌어올렸다는 데에서 좋은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죠.
스타트업과 민주주의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대표가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해', '내가 왜 열정 페이 받아가면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열에 아홉은 그런 말을 꺼낸 뒤 얼마 안 있어 퇴사를 선택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한 스타트업에서 비슷하게 여러 번 사람을 잃고 나면 조직조차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쿠 퍼실리테이션 그룹의 세미나에서의 마지막 결론은, 지금은 민주주의로 얻는 손해보다 그로 인한 편익이 더 커지는 시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와비파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의사결정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은, 그를 돕기 위한 여러 플랫폼과 토론 프로세스 등의 도입을 통해 시스템적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단점에 매몰되어 민주주의의 편익을 쉽게 버리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우리 조직에 맞게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여러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 빠띠도 그 상상에 즐겁게 동참하겠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일상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https://union.parti.xyz/p/democraticlife 로 오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