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록 맛있는,

[추석 특집] 김치

by 갱그리

설이나 추석이 되면 명절을 맞아 각종 음식과 선물들이 오간다. 결혼 전에는 백화점의 추석 선물 세트를 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저 무심히 지나쳤는데, 결혼하고 나니 시댁과 친정에 자식 노릇한다고 하나씩 보내는 게 예의가 되었다. 그러나 선물을 보내는 것이 으레 있는 관습이라기보다는, 이번 명절엔 뭘 보내 드릴까 고민하는 즐거움과 열심히 돈 벌어 보낸다는 뿌듯함이 뒤섞여 일 년에 두 번 누리는 재미가 되었다.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 사이에서도 명절에 주로 음식을 왕래하시는데, 엊그제 시어머니께서 친정에 떡을 보내 주셨다. 시댁에서 보내 주시는 떡은 유달리 맛있어서 나도 친정부모님 옆에서 열심히 집어 먹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손님이 왔다. 누군가 하고 내다 보니 아랫집 아주머니였다. 어제 엄마가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떡을 잘라 아랫집에 다녀오신다더니, 아랫집 아주머니도 답례하러 오신 듯했다. 들고 오신 것은 정성껏 담근 물김치와 생김치였다. 새콤하면서 매콤하고 딱 맞게 익은 것이 김치만 식탁에 놓아도 밥이 몇 그릇이든 술술 넘어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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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집 앞에서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오래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지만 어찌 동참할 수 있는 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트위터에서 노동자들의 시위 캠프에 김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글을 보았다. 마침 집에 김치가 있었어서 엄마와 함께 김치를 각자 한 봉지씩 나눠 들고 캠프를 찾아갔다.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들이 정말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아주시는 바람에, 별것도 아니었는데 그동안 쉽게 걸음 하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요즘엔 김치가 여성 혐오 단어 때문에 욕처럼 많이 쓰이지만 내게 있어 김치는 따뜻한 정 그 자체다. 김장철만 되면 커다란 냄비에 포기째 김치를 담가 주신 옆집 할머니, 순무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 귀한 순무 김치를 한 가득 안겨주시던 시어머니가 있었기에 매일의 식탁은 늘 부족함 없이 넉넉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명절 선물은 여기에 더 가까웠을 것 같다.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선물 세트처럼 예쁘게 포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반갑게 내어줄 수 있는 김치 같은 것 말이다. 가족과 이웃들 덕택에 내 식탁이 풍요로워졌다면, 나 또한 더 많은 이웃과 현장들에 내 김치를 내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삶을 작게나마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보름달이 동그랗게 뜨는 추석이다. 부침개에는 자고로 신 김치를 곁들여야 하므로, 이번 가을에 김치가 필요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김치를 필요로 하고, 다행히 우리는 기꺼이 내어 줄 김치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올 추석은 풍요로워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추석에도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또한 당신의 이웃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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