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감사

김치볶음밥

by 갱그리

친정에 올 땐 뱃속에 있던 아기가 어느덧 세상에 나오고 또 자라서 이제는 바운서도 발로 차며 놀고, 제법 옹알이도 하면서 사람 흉내를 낸다. 엄마가 지어준 밥을 먹으며 힘내서 아기에게 밥을 주게 된 지도 10주, 친정에 머무른 지는 이제 15주가 지났다. 이번 주로 16주 차, 넉 달 째인 이제야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아기 짐은 말할 것도 없고 넉 달 간 머물렀던 생활의 흔적이 쌓여 우리 가족의 짐은 원룸 이삿날 수준이다. 미리미리 부지런히 나르고 버리고 나누고 했는데도 남은 짐은 아직도 한가득이다.


친정에 있는 동안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신혼 집에 있을 땐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고향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평소 듣고 싶었던 희곡 작법 수업도 들었다. 그간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들을 원 없이 읽었고, 쓰고 싶었던 글들을 모조리 다 썼다. 출산 이후엔 아무래도 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고 썼다. 에세이, 리뷰, 육아일기, 희곡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소득은 마치지 못한 이 에세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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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서 이제 부모 마음을 알겠다느니 하는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까지 닿으려면 수십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보다는...매일,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아기를 어떻게 달래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날, 우는 아기를 달래지 못해 아기와 같이 엉엉 울었던 날, 엄마라는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보이기만 했던 날.. 그 모든 하루하루에 든든하게 동행해주며 늘 '넌 정말 좋은 엄마야'라며 다독여주었던 우리 엄마. 내 두려움도 걱정도 늘 그 따뜻함 속에 녹아 들었다.


정말 평범하지만, 내게는 가장 특별한 음식인 김치볶음밥. 아침에 깼던 아기가 비로소 잠이 든 점심 시간이면, 한바탕의 전쟁을 끝내고 난 엄마와 나는 주로 찬밥에 김치를 달달 볶아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각자의 그릇에 나눠 담지 않고, 김치볶음밥을 볶았던 후라이팬 그대로를 식탁에 턱 놓고 엄마와 마주 앉아 먹다보면 비로소 오후의 햇볕이 느껴지곤 했다. 거기에 계란후라이 한 장까지 얹으면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원래 엄마의 김치볶음밥을 좋아했지만, 아기와 함께 겪은 이 날들이 지나고 난 뒤에는 이 진부한 음식이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정 깊은 요리가 되었다.


이제 아기를 안고 우리의 집으로 돌아갈 날이 성큼 다가왔다. 출산 이후 방전되었던 몸과 마음이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으로 온전히 충전된 채로 돌아간다. 앞으로도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이 내게 그렇게 해주셨던 것처럼.


p.s 이 미완의 에세이는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쌓아갈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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