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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그리 Nov 04. 2018

여성개발자,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만나다.

여성개발자×십대여성인권센터 워크숍 후기

세 시간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워크숍에 참석하기 전의 나로요.



워크숍이 끝난 후 한 참여자가 건넨 말이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빨간약을 먹었다고요. 이제 돌아갈 수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빨간약'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씨앗'이었던 어제의 워크숍 <여성 개발자들은 온라인 청소년 성매매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가 끝났다. 사실 준비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주연님과 초동 모임을 가졌던 날이 10월 16일이었고, 워크숍은 11월 2일이었으니까 준비기간은 고작해야 2주였다. 2주 안에, 그것도 꿀같은 '불금 저녁'에 여성 개발자들을 모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이 질문에 회의적이었다. 5명 ~ 10명 사이만 되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무려 30명이 모였다. 그런데다가 국내 주요 여성 개발 커뮤니티에서 한 두명씩은 모두 참석했다. Women Who Code, Women Techmaker, 테크페미, GDG까지. 



어떤 기술들은 여성을 착취하며 성장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님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충격적이었다. 닷페이스의 영상 'Here I Am'을 보았고, 십대여성인권센터의 발표를 한 번 들었던 적이 있어서 내가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던건 오만이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


조진경 대표를 만난 한 성매매 채팅 앱 회사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우리나라 정부는 전혀 무섭지 않아요. 무서운 건 구글이죠." 구글은 특정 앱의 사용자가 100만명을 넘으면, 그 앱이 음란 콘텐츠를 담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이 채팅 앱은 구글의 어플리케이션 검수를 받지 않고자, 똑같은 모양의 앱을 이름만 달리 붙여 여러 개 출시한 뒤 사용자를 분산시켰다.


채팅 어플리케이션은 성판매 청소년이 위험을 인지하고 신고하려 할 때에도 자신의 어플리케이션을 증빙 자료로 제출할 수 없도록 갖가지 수를 쓰고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메세지가 삭제되고,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대화 로그를 사용자가 캡쳐할 수 없다. 오프라인 만남의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 미리 성구매자의 돈을 맡아주는 안전거래의 방식을 지원하기 한다.


더 놀라운 건, 이런 문제가 채팅 어플리케이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 십대 여성 청소년 성매매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넘어 유튜브 등 다른 플랫폼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즉 어떤 하나의 어플리케이션만을 두드려 잡을 수가 없다는 것. 바로 이게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여성 개발자들을 만나고 싶어했던 이유다. 기술은 도저히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이 때문에 피해 범위나 대상까지도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일단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이 문제에 공감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조진경 대표님은 반복해서 힘주어 말했다.


여성들이 기술을 갖고 있는게 중요해요.
그 기술이 바로 무기라는 사실을 알아줬음 좋겠어요.


워크숍 세션은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진행됐다. 하나는 "여성 개발자인 내게 기술은 무엇인가?" 였고, 다른 하나는 "여성 개발자는 십대 여성 청소년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였다. 


여성 개발자인 내게 기술은 무엇인가



여성 개발자들 각자가 생각하는 기술을 포스트잇에 한 단어로 써서 종이에 부착했다. 나왔던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대개 IT기술은 무언가를 하는 도구였고, 힘이었다. '자신감'이라고 이야기되는 부분도 눈에 띈다.  

Social Movement, 생계, 자신감, 힘, Magic Wand, 생업, 표현의 도구, 민주주의, 평등, 수단, 밥벌이, 세상을 좀더 좋게 만드는 도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세우는 일, 권력, 더 많은 가능성을 발굴하는 일,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가능한 직업으로서의 일, 놀이, 샌드박스

그리고 이 테이블에서는 성평등한 IT서비스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IT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로젝트 팀원들을 남녀 동수로 맞추는 방안이 이야기되었고, 의사결정과정 구조를 수평적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나왔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발언권을 높이고 최종 의사결정권에 여성의 의견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IT서비스에 대한 정책적 규제의 필요성도 논의되었다. 어플리케이션을 검수할 때, 등급 심의에 젠더 요소 등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성평등 체크리스트 같은 것을 도입하여 IT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미리 성평등 요건을 만족시키는지 자체검수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또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중개 플랫폼들이, 자신의 플랫폼 위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거래 문제에 있어서 확실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여성 개발자로서 우리는 여성 청소년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도 먼저 포스트잇에 자신의 생각을 써서 붙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나왔다.

학원을 열어 여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한다. 페이스북/카드뉴스, 편하게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기(친한 아는 언니), 상담앱, 방과후교육 (동기부여), 경제적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기부할 수 있을까, 스스로 신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부분, 탈출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 테이블의 퍼실리테이터는 십대여성인권센터 활동가들이 맡았다. 여성 개발자와 센터 활동가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의문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떠어떠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은데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 등) 


처음에는 교육, 멘토링과 같은 방식도 많았는데 나중에 정리된 의견들은 다음과 같았다. 

십대 여성 청소년들이 지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든다.

십대 여성 청소년들에게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회에 고취시키고 널리 알려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할 것인가


참여자들 모두가 바로 이 질문에 갈증을 느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할 것인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무언가 깨부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다들 마음아파했다. 그래서 이 워크숍 세션을 마무리하면서, 이것은 '시작일 뿐' 이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빨리 후속모임이 열리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연말 안으로 후속 모임을 준비하려고 한다. 우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면 무언가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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