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나는 언제 들어도 불쾌했다. 그 약이라는 시간을 견디기가 힘드니 지금 이 고통이 있는 것 아닌가. 누가 몰라서 이리 힘든가, 싶어 늘 그 말만 들으면 괜히 성질을 부리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깨달아진다. 정말로, 시간만이 약인 일이 있다.
출산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좋은 시절은 딱 사흘까지였다. 나흘부터는 젖몸살이 심하게 와 겨우 몇 일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있기 때문에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었던 데에 있었다. 초산이었던 나는 모유가 안 나올 걱정을 했지, 모유가 나오는데 아기에게 못 물린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었으므로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조리원 마사지실도 추석 연휴에 쉬어버려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바라야하는 지도 몰랐다. 그저 인터넷을 뒤지며 마사지하고, 유축하고, 냉찜질하며 가슴과 씨름했다. 하루종일 가슴만 붙잡고 있었다. 내 모든 시간이 모유와의 전쟁이었다. 아기를 면회하기 위해 잠깐 외출했을 때도, 고작 한두시간 남짓이었는데도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가슴을 화장실에서 붙잡고 모유를 쥐어 짜내야 했다. 그러고나면 한없이 서러워져 눈물을 엉엉 쏟아냈다. 쉽게 피로해지고, 깊게 우울해졌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아기가 물어줘야 낫는 병,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게 맞는 말이었지만, 아기는 당장 내 품에서 수유할 수 없었기에 기다려야 했다. 내가 당장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냉찜질과 마사지는 고작해야 한 시간 정도 가슴을 편하게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아기가 오면 나아지겠지, 주문처럼 외우며 아기가 퇴원하는 날짜를 손 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가 퇴원했다.
그러나 생후 일주일동안 분유만 먹던 아기인데, 당연히 모유를 쉽게 먹어줄 리 없었다. 바라고 바라던 첫 수유에서 겪은 아기의 격한 거부 한 번에 나는 쉽게 무너졌다. 수유실의 다른 산모들도 많은 자리에서 나는 눈물만 쏟다 첫 수유를 끝냈다. 가슴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기가 내 가슴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뱃속의 아기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아기도 노력하고 있었다. 수유를 하다보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용을 쓰는게 보여 안타까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모유수유를 해야 하나, 회의감이 차오를 때마다 남편이 옆에서 토닥였다. 힘들면 그만두자, 분유도 잘 나오니까 요샌. 친구들에게도 물었다. 부모님께도 여쭤보았지만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매정한 엄마라고 욕할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서 주변에 계속 물었다.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모유수유를 계속하는게 의미가 있을까요? 계속하라고 하는 사람은, 수유실에서 모유수유를 자신만만하게 해내는 경산모 한 두명 외에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내가 강박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이 아기는 내 가슴에 차차 적응해주었다. 여전히 종종 짜증을 냈지만 자세를 바르게 해주거나 쉬었다 먹이면 곧잘 먹었다. 정 안 먹으면 포기하고 유축해놨던 모유나 분유를 젖병으로 조금 주고 나서 다시 빨게 하면 먹기도 했다. 아기에게나 나에게나 어찌됐든 쉬운 일만은 아닌게 분명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아기가 조금씩 적응하는게 보이자 나도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걸 그만두었다.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답을 구할 대상이 달랐던 질문이었다. 그건 아기와 나, 우리가 결정할 문제였다.
아기와의 관계성은 서로의 몸으로부터 발현된다. 나는 '모'라는 신체적 의무를 맞이하며 생겨난 내 신체의 낯섦 때문에 괴로웠다. 결국 내게 약이 되는 시간이란, 아기와 나의 몸이 부딪히며 내는 불협화음에 서로가 길들여지는 시간이다. 모유수유를 하든 않든, 그런 건 그 어떤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이러한 몸의 대화가 너무나 어렵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앞으로 이런 대화를 얼마나 해야할까, 나는 내 몸의 변화를 어느정도나 맞이해야 할까, 내 일상은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이 새로운 관계를 앞두고 나는 여전히 두렵다. 두렵지만, 어찌됐건 그때에도 분명 시간이 약일 것이다. 아주 천천히, 느릴 지언정. 후의 나를 위해 기록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