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我일기

+16 나에 대한 용기

by 갱그리

산후조리원을 나온지 이틀, 어제는 두세시간 수유텀을 지키며 무난히 넘어갔는데 오늘은 아기가 한나절 동안 거의 잠에 들지 않았다. 잠을 재워도 20분마다 잠에서 깨어 자지러지게 울었다. 기저귀도 깨끗했고, 목욕도 시켜 줬고, 수유도 충분히 해주었고, 소화 운동도 했는데 그랬다. 대체 왜그러는 건지 몰라서 한참 헤맸는데, 친정부모님이 정답을 찾아냈다. 정답은 의외로 아기침대였다. 사둔 침대가 약간 흔들렸는데, 아기가 자다가 놀랄 때마다 침대가 흔들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는 모양이었다. 바닥에 눕히니 아기는 금세 깊이 잠들었다. 마지막으로 잠에서 깬 지 일곱시간 만이었다.


아기가 잠에서 깨는 이유는 1) 기저귀, 2) 수유, 3) 배앓이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흔들리는 침대 때문이라는 건 정말 의외의 사실이었다. 공식에만 매달리던 나와 달리 친정 부모님은 아기가 깨는 모양새를 유심히 보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이었다.


그 사이 나는 나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아기와 떨어져 있으면 온갖 최악의 상상들을 떠올리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지만 아기와 함께 있을 때는 정작 그렇지 않았다. 아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채거나 딸꾹질을 오랫동안 하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아기와 함께 있을 땐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기와 떨어져서 아기를 돌볼 생각만 하면 또 다시 공포와 우울이 찾아왔다.


아기와 함께 있는 현실, 내가 직접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타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행위들 자체는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거나 막연하지 않았다. 모두 구체적이었고 도움을 구할 사람이 주변에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로부터 한 발짝만 뒷걸음질 쳐도, 나는 내 감정들에 빠져 그것들을 모두 총체적인 난관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상황들이 내게 전달하는 단 한 가지의 사실은 이랬다. "나는 이 감정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아기를 돌보는 일에서 멀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우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아기를 돌보는 일들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면 아기와 떨어져 있어도 크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아기와 눈을 맞추고, 나를 도와주는 남편, 친구, 가족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면 나는 이 마음들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경우, 나에 대한 용기와 확신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과 행동의 결과로부터만 얻을 수 있었다. 이 사실들 역시 나를 찬찬히 관찰하며 얻어 낸 결과였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형적인 공식들은 내게 맞지 않았다. 우리 아기의 불규칙한 수면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늘 예외가 있고 변칙이 존재한다. 그러한 상황이 닥칠 때, 다시 나는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관찰하고 결과를 얻어내는 것, 그러므로 맹신은 언제든지 미루어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사실들이지만 이렇게 하나씩 되짚어나간다. 지인이 말한 것처럼 아기와 나는 잘 클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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