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아남았다
아기가 보채기 시작한 건 어제 저녁부터였다. 가택연금이나 다름 없는 생활에서 텔레비전은 귀하디 귀한 것이어서, 나는 생전 보지도 않던 엠넷을 틀어놓고 <2015 MAMA> 시청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아기는 낮 내내 거의 잠을 자다 깨다 했으므로 저녁엔 잠 좀 자주겠지,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이 있어 집에 갔던 남편에게는 호기롭게 오늘 안 들어와도 좋다고, 모처럼 혼자 자라고 이야기까지 해두었다. (지금 나는 친정에서 조리하고 있다.) 친정부모님은 공연을 보러 나가서 열두시에나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기는 자지 않았다. 바운서를 타고 놀지도 않았다. 우유를 먹고 트림을 시키면 계속 칭얼거렸다. 계속해서 안다보면 팔이 빠질 것 같았고, 포대기로 업으면 아직 성하지 않은 골반이 삐그덕거렸다. 결국 <2015 MAMA>를 음소거해놓고, 물 소리 어플을 틀었다. 콸콸콸콸, 물소리에 아기는 좀 진정이 되나 싶었지만 물소리가 조금이라도 작아지면 또 보채기 시작했다. 안고, 업고를 반복하며 진정된 아기를 이제 내려놓으려고 하면 다시 보챘다.
육아 책에서는 이맘때쯤 아기들이 보채는 건 '무서워서' 라고 한다. 급격한 성장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면서 낯설어져 유난히 엄마 품을 파고들게 된다고 했다. 그 챕터를 읽었던 나는 내용을 곱씹으며 '그래, 얘가 무서워서 그럴거야. 잘 달래줘야지.'하고 마음을 착하게 먹었다. 그리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달래주었으나, 열두시쯤 방전됐다. 그리고 다행히 그때 친정부모님이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방전된 나를 대신 해 아기를 업어주셨다. 네시간이 넘게 칭얼거리던 아기는 친정어머니가 업어주자마자 잠들었다.
하지만 아침은 너무 빨리 왔다. 아기는 통잠을 자고 아침 일곱시에 일어났으나, 나는 어제의 피로로 몸이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는 지, 아기는 평상시대로 보채던 수준이었으나 나는 도무지 아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거의 잠을 안자던 아기는 업어줘도, 안아줘도, 눕혀놔도 울었다. 가만히 있었던 때는 창 밖의 눈을 보며 옹알이를 할 때였다. 약 이십분 정도 내 품에서 옹알이를 하던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모처럼 낭만적인 기분에 휩싸여 캐롤까지 틀어놨으나, 다시 캐롤은 물소리로 바뀌었다.
젖병 소독도 해야했고, 분유를 타기위해 뜨거운 물도, 식힌 물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아기를 업은 채로 분주히 일을 하는데 아기는 계속 싫다는 듯 온몸을 뒤틀어 포대기가 풀어졌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아기에게 울기도 하고 호소하기도 하고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이모저모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회사에 있던 남편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 와중에도 아기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아기와 내가 서로 마주보며 울다가, 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아기는 잠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저녁, 나는 친정어머니와 남편에게 아기를 온전히 맡기고 이 글을 쓴다. 오늘은 그저 너무 힘들었다. 남편과 어머니가 아기를 봐줄 때 나는 아기의 얼굴도 보고싶지가 않았다. 그냥 너무 지친 하루였다. 언제쯤 되어야 좀 편해질 수 있을까? 밖으로 도망가고 싶었으나 바깥도 너무 추웠다. 딱 하루만이라도 아기 울음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은데, 당분간 그런 날은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위로해야겠지, 오늘도 살아남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