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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그리 Jan 13. 2016

+112 버리기 연습

오늘은 모처럼 아기도 남편도 일찍 잠들었다. 평소 열두시는 되어야 자던 아기가 오늘은 아홉시 반에 곯아 떨어져 버렸다. 덕택에 나도 그때 침대에 누웠지만 너무 오랫만에 일찍 해방이 온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자두지 않으면 몇 시간 후 반드시 후회할 일이 올테지만, 일단은 오랜만에 찾아온 이 혼자만의 시간, 오롯한 나만의 밤을 누리려고 용기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육아를 하며 세운 원칙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기가 잘 때는 나도 자거나, 무조건 논다.'이다. 일을 한다고 해봐야 빨래, 가사, 청소 등인데 뭐든 손 하나 삐끗하면 큰소리가 나기 십상이라 아기가 금방 깨 버리고, 나조차 쉼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다시 전쟁 같은 시간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력을 보충해야 하건만, 게다가 이번에는 어느 새벽에 다시 아기를 맞아야할 지 알 수 없는데도, 오늘은 남은 밤을 나를 위해 써보려고 한다.


최근 나는 '버리기 연습'이라는 걸 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들어갔다가 요근래 베스트셀러라는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책의 표지에는 요와 노트북 하나가 단촐하게 놓여진 작은 방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책 소개를 보니 최소한의 물건만을 지닌 채로 생활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듯 했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번 이 취지에 공감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옷장을 제일 먼저 열었다. 커다란 상자를 꺼내놓고 아기를 보면서 틈틈이 안 입는 옷들을 한 장 한 장 넣어두었다. 그러다보니 옷 뿐 아니라 가방, 스카프,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커다란 상자가 가득 차버렸다. 옷을 어떻게 버릴까, 궁리하다가 그냥 버리기엔 멀쩡한 것들이 전부라 아까워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마침 집 근처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주말에 다녀 올 생각이다.


그리고 최근 재미가 들린 건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올리는 일이다. 우리집은 침실에 책장을 두었기 때문에, 아기를 안고 침실에서 재우다보면 자연스레 눈 둘 곳이 책장 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아기를 재우면서 멍하니 책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곤 했는데, 지금은 버릴 책들을 찾아보고 있다가, 아기가 자면 한두권 꺼내와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올린다. 2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들어온 주문 건에 대한 택배는 남편을 통해 보낸다. 남편이 고생이지만, 오늘은 중고 서점을 통해 판 책값으로 보쌈을 사먹였더니 나름 흡족해했다.


옷과 책, 다음으로 내 시선이 도착한 곳은 주방이었다. 카페 오픈 기념, 혹은 컨퍼런스 참가 기념 등의 이유로 받았던 행사 머그컵들이 주방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 외에도 예쁜 머그컵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기에 우리집엔 머그컵이 넘쳐났다. 머그컵을 사용하는 사람은 남편과 나 둘 뿐인데, 스무개도 넘는 컵이 작은 주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쓰는 것만 계속해서 사용할 뿐, 대부분은 손도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이 머그컵들은 어떻게 처분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녹색당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연락해보았다. 녹색당은 자연과 환경을 중요시하는 정당이니까, 사무실에서 머그컵을 쓸 일이 많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침 녹색당의 선거사무실이 오픈하여 머그컵이 부족하다기에 얼른 포장해서 택배로 부쳐 버렸다. 


버리는 것도 너무 잦으면 병이라지만, 병이 되기엔 아직 까마득히 이를 만큼 아직도 우리집엔 잡동사니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실 이것은 다 천삼백케이, 텐바이텐의 음모에 빠진 때문이다. 세상엔 쓸데없이 귀엽고, 너무 예뻐서 사람을 홀리는 것들이 넘쳐난다. (물론 나는 귀엽고 쓸데없는 물건의 대표격인 피규어를 너무 많이 사모았다. 이건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흑..) 그러나 물건이 주는 기쁨만큼이나, 물건이 주는 부담감도 분명 있다. 그리고 한편, 물건이 물건을 부르는 일도 잦은 것 같다. 머그컵들을 모으다가 머그컵 장식장을 사고, 머그컵 장식장을 꾸미기 위해 또 다른 화분들과 머그컵들을 사들였던 내 지난 날처럼 말이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테리어에 너무 욕심을 내다보면 물건을 자꾸 사들이고, 그러다보면 또 물건들에 치우쳐 집에 사람이 얹혀 사는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사실 내가 그랬다. 그러다가 소파와 피아노를 버리니 아기과 함께 놀 마루가 생겼고, 지금은 안 쓰는 물건들을 또 치워내니 아기의 짐들이 들어올 공간들이 생겨났다. 사실 아무리 물건을 버리더라도 아기의 성장에 따라 새로운 아기 물품이 계속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라도 나는 계속 버리기를 의식적으로 연습하려고 한다. 지금은 다행히도 물건을 사면서 느끼는 기쁨보다 물건을 버리며, 혹은 나누며 얻는 만족감이 조금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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