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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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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그리 Jan 24. 2016

+122 무인도의 시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아서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야비함,
그리고 어떤 찰나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설령 그들이 그대의 집 안을
가구 하나 남김없이 난폭하게 휩쓸어가 버리는
한 무리의 아픔일지라도.

그럴지라도 손님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모셔라.
그는 어떤 새로운 기쁨을 위해
그대의 내면을 깨끗이 비우는 중일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미움,
그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어라.

어떤 손님이 찾아오든 늘 감사하라.
그 모두는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보낸 분들이니.

-잘랄루딘 루미, <여인숙>


교회에 가지 못한 주일이면 청파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찾아 듣는다. 오늘 설교엔 이 시가 등장했다. 아기와 나만 있는 이 조그맣고 힘겨운 무인도로 날아든 편지 같아서, 이 시를 읽곤 목이 메여 울었다. 


나는 요새 종종 운다. 불현듯 전화를 걸어 준 사람의 따뜻함에, 아기의 보드라움에,  혹은 오후의 적막함과 과거에의 연민에. 인생은 참으로 부질없고 얄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부쩍 많아졌지만, 이 시는 나의 삶을 그래도 다시 한번 보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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