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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그리 Feb 07. 2016

다음 생엔 달라질 수 있을까

지나간 것들은 미련을 남긴다. 가벼운 아쉬움이 아니라 끈덕지게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미련. 그래서 나는 아직도 과거에 늘 사로잡혀 있다.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누구를 만났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늘 과거를 되묻고 또 다른 현재를 상상하지만 언제나 그 말미에선 다시금 현실에 안착해야 한다. 


스물네시간동안 열평 남짓한 공간에 묶여있는 이 몸.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여도 집안일은 끝나지 않는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는 일에 염증을 느끼다 못해 이 반복된 일상 속에 갇혀버린 내 자신이 괴물스럽게까지 보이는 시점이 오면 다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 어디서 잘못된걸까.


열여덟시간을 꼬박 토론하고, 정성껏 피켓을 만들어 집회에 나가고, 수북히 쌓아놓은 책을 읽으며 발제문을 쓰던 날들이 있었다. 자본주의, 민주화 운동, 인권 같은 단어들을 하루에도 삼십 번씩 얘기하며 반짝거리는 새세상을 꿈꿨던 때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에 열정적이었다. 큰것보다 작은 것을, 화려한 것보다 수수한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그 시간은 청춘이었고, 자유였다.


지금은 전혀 다른 것들을 고민한다. 수유, 이유식, 태열을 이야기하고 온종일 아기의 머리를 쓸어주고 등을 다독이며 하루를 보낸다. 이유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고, 재우다 보면 스물네시간이 모자라게 지나가 버린다. 민주주의, 같은 말은 뉴스에서나 자막으로 멍하니 보았을 뿐이고 그나마 책장을 메운 그 시절의 도서 목록을 보며 위안을 삼다가도 문득 한숨처럼 중얼거린다.


"나, 다음 생엔 달라질 수 있을까"


결혼과 출산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일상을 각오했던 것도 아니었다. 힘든 건 육아라기보다는 생활에 녹이 스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현재는 이렇다. 아마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 생엔 달라질 수 있을까.'는 결국 이런 물음이다. 후회없이 살아 온 나날들이 쌓여 만들어 낸 지금이 날마다 체력와 정신력의 한계를 감수하게 한다면, 나는 이 일상을, 그리고 나의 지나온 삶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건 지금 '옳은 상태'인걸까.


누구도 대답해주지 못할 것 같은 이 질문에 기꺼이 응해준 건, 뜻밖에도 13세기 아랍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였다.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아서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야비함,
그리고 어떤 찰나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는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설령 그들이 그대의 집 안을
가구 하나 남김없이 난폭하게 휩쓸어가 버리는
한 무리의 아픔일지라도.

그럴지라도 손님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모셔라.
그는 어떤 새로운 기쁨을 위해
그대의 내면을 깨끗이 비우는 중일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미움,
그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어라.

어떤 손님이 찾아오든 늘 감사하라.
그 모두는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보낸 분들이니.

-잘랄루딘 루미, <여인숙>


현재는 과거의 종착점이 아니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현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전적으로 과거에 내가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다시 거꾸로,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과거는 늘 옳은 것이 된다. 서점에 널려있는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처럼 말이다.


잘랄루딘 루미의 말을 살짝 바꾸자면 '인생이란 존재도 여인숙'이다. 때로는 고통이, 때로는 기쁨이 손님처럼 찾아오고 우리는 어떤 손님이어도 기꺼이 맞을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힘든 건, 지금 도착한 손님이 그저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정말이지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삶은 잘못되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했었던 것도, 그때마다 진실된 선택을 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니까.


사람들은 곧잘 지금의 시간만을 보고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는 식의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판단할 수 없다. 인생은 복잡하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 지는 설령 신일지라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나와 같이 '다음 생'을 꿈꾸려는사람들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지금 어떤 손님을 맞을 뿐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현실에도 그저 진실하자.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질문 앞에 진실했다면 당신은 정말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영영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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