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싱숭생숭한 날들이 이어진다. 아기는 4개월 차에 접어 들면서 낮잠을 깊게 자지 않는 버릇이 생겨났다. 육아 서적의 말을 빌자면 아기는 지금 돌 전에 겪는 가장 길고 힘든 성장의 문을 지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잔혹한 영유아 살해 사건이 연일 뉴스로 보도됐다.
아기는 어렵게 잠을 재워도 곧 깨곤 했다. 그러는 통에 나도 남편도 명절 연휴 내내 진이 빠져 버렸다. 이제야 아기를 재우고 좀 쉴라치면 곧 잠에서 깨버렸고, 교대하면서 보려해도 아기가 우는 소리에 누구 한 명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연휴 마지막 날, 감사하게도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시부모님 덕택에 우리는 아기를 맡기고 외출했다. 그리고 동네의 한적한 카페로 달려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일주일만의 휴식이었다.
가족들의 자는 때와 먹는 때를 모두 다 결정하니 이럴 때는 영락없이 아기가 집안의 최고 권력자인 셈이지만 아기가 자고 있을 때는 또 다르다. 겨우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모락모락 피어난다. 몸뚱아리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 이 아기. 아기는 어떻게 이렇게나 여리고, 부드럽고, 약한 존재일까. 우리도 그렇게 태어났겠지마는 오로지 나만을 믿고 태어난 이 어린 존재를 보는 감정은 복합적이고 미묘하다. 내 손짓 하나에 살 수도, 꺼뜨려 질 수도 있는 이 어린 생명 앞에 나는 무언가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많은 부모들에게 이 두려움은 순간의 충동과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아기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면 어쩌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얼마 전엔 잠을 워낙 안 자고 계속 보채는 아기에게 화가 난 나머지 엉덩이를 조금 세게 때렸다가, 아기가 심하게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어 정말 미안했다는 다른 집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자식이었을 때도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부모님께 매질을 받았는데 그 후 방에 들어 온 엄마가 울면서 연고를 발라주었던 밤들. 맞을 만한 잘못을 했든, 아니면 다른 일에 대한 화풀이에 가까웠든, '사람이니까' 용인되고 납득되는 수준은 여기까지다. 그 이상 나아가는 폭력은 어린아이라는 신체적 약자를 일방적으로 짓밟는 행위다. 그리고 이 폭력은 그가 사회적으로 경험한 약자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반복적으로 행해 온 약자를 대하는 태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괴물체일 것이다.
부천 여중생 사건을 바라보며 모 교회의 목사가 올린 글을 읽었다. 그는 목사도 박사도 사람이다, 라는 말로 시작하여 사람은 누구나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고 이야기했다. '사람이, 목사가, 신학 박사가 어떻게 그런 일을...' 이라는 세간의 반응에 대해 토로한 글이었다. 그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일견 맞는 말 같으면서도 무언가 깨림직한 감정을 깊게 남긴다. 내 생각에 그것은 가해자 목사가 속한 교회와 종교계의 책임을 너무나 쉽게 벗겨내는 일로 보였다. 목사가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건, 지금의 교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하는 때라는 이야기 아닐까.
'목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내 안의 괴물을 조심하라'는 건 (기독교가 싫어하는) 니체도 한 말이다. 지금은 '내 안의 OO'를 찾을 때가 아니다. 내면과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약자에게 인정사정 없는 지금의 사회와 각 계의 시스템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용인 받았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몰라도, 사람은 '누구나'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누구든'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세상을 만들라고 교회가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물론 그런 뜻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태어난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우리 아기도 기나긴 터널을 겪는데 오랜 세월을 걸어 온 한국 교회라고 어둠이 없겠는가. 중요한 건 지금의 날들이 주는 의미를 깨닫는 일이다. 섣불리 봉합해 버리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한다. 낮에 잠을 못 드는 아기에게 예전처럼 신경안정제라도 먹이며 억지로 재울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기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저 나는 이 힘든 성장기를 겪는 아기를 옆에서 애틋하게 응원할 뿐이다. 그리고 이전엔 정말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었던 한국 교회의 앞날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정말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진심으로, 한국 교회가 '은혜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