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我일기

+160 안녕이라곤 못하겠네요

by 갱그리

얼마 전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휴직하기 전부터 회사 사정은 좋지 않았고, 휴직한 이후에도 몇번인가 회사 동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옆팀은 이랬대' '저팀은 이랬대' 막연하게 듣던 뜬소문들이 어느 순간 내 이야기로 좁혀져 왔을 때, 어이없어 웃음부터 나왔다. 육아휴직에 따른 인사 불이익이라니. 여직원 비율이 높았던 우리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내용은 전환 배치였다. 속이 하얗게 들여다 보이는 수였다. 아이를 임신한 때에도 자정이 넘도록 퇴근하지 못했고, 주말도 반납하며 일하다가 조산할 뻔한 나였다. 무단결근이나 지각은 물론 해본 적 없었다. 근거를 요구하는 내게 팀장은 "복직 시점이 너무 멀어서 대상자가 됐어."라고 대답했다. 조기 복직하겠다고 했으나 거절 당했다. 결정했으니 따르라는 말이었다. 내가 부당하다고 하자, 팀장도 부당할 수 있다고 했다. 팀장은 가슴 앞에 단단히 팔짱을 끼고 있었고, 그건 어떻게해도 내가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었다.


울지 않았다. 면담을 하자고 연락 온 시점부터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기로 작정했다. 결국 다음 날 나는 퇴사 의사를 밝혔다. 전화를 끊고나자 온갖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입사한 이후 신입 사원 합숙 훈련을 했던 것도 떠오르고, 업무가 너무 힘들었던 날 사수와 함께 울며 술 마셨던 기억도 났다. 나는 팀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들과 함께 술 마시고, 떠들고, 진급을 축하하고,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던 것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다 그 뿐. 이제 앞으로 오지 않을 날들이다.


이번에는 아기가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아기를 안고 면담하러 갔다가 마찬가지로 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오면서, 내려다보면 환히 웃는 아기 덕택에 나는 크게 좌절하지도 상처 받지도 않았다. 그냥 담담했다. 집에 가면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푹 재워줘야지. 젖병소독도 하고 빨래도 해야지.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일상의 과업들이 지금은 오히려 충격을 흡수하는 에어백이 되어 주었다.


육아휴직자에 대한 이러한 처우는 부당하다. "팀장님의 며느리도 나중에 저와 같은 꼴이 날 것."이라고 얘기하려다가 목구멍 뒤로 꾹 넘겨버렸다. 팀장에게 저주해봐야 뭐하나, 내가 저주하지 않더라도 그의 며느리는 내 짝이 날 것이다. 2016년에도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목이 간질간질 했으나 후회하지 않을 말들만 건넸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정말이지 싫다. 갑작스레 휴직하는 바람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짐을 가지러 어차피 회사에 가야하니까, 가능한 명랑하고 당당하게 퇴직 인사를 돌릴 생각이다. 나란 사람, 회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 회사에 다녔었다고. 회사에도 눈도장 한 번 박아주고 나올 셈이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 미워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눈 맞추며 인사해야지. 물론 회사에겐 안녕하라곤 말 못하겠지만, 그들에겐 안녕하라고 말할 참이다. 밉고, 행복했고, 좌절했고, 자존심 상했고, 한편으로 성취감도 있었던 내 5년의 청춘. 안녕,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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