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비빔국수
어느 날 회사에서 점심으로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나오다가 예전에는 토요일마다 오전 근무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땐 어차피 토요일날 출근을 해야 하니 회식을 주로 금요일 저녁으로 잡아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그 다음 날 출근해서 동료들과 이렇게 해장국으로 점심 해장을 한 뒤 퇴근했다고 했다. 지금은 주 5일제가 정착되어 주로 회식은 목요일 저녁으로 잡히고, 그 다음 날인 금요일에 종일 근무해야 하니 술 마시기가 부담스럽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노라고. 오히려 주 6일제였던 때가 술 마시기엔 좋았던 것 같다며 부장님이 껄껄 웃었다.
아마도 토요일 날 출근하던 그때 그 당시가, 내게는 토요일날 등교를 하던 초등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나의 토요일 시간표는 두 시간의 과목 공부와 두 시간의 특별활동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별활동은 4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이루어졌고, 원한다면 중간에 다른 활동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나는 종이공예반에서만 3년을 보냈다. 종이공예반에선 종이 접기 같은 건 하지 않았고, 주로 신문지 공예를 했다.
신문지 공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가 삼 년 간 했던 건 주로 신문지를 말아서 만드는 방식이었다. 신문지를 활짝 펼친 후 끝 부분에 쇠꼬챙이 같은 것을 끼워 신문지를 돌돌 만다. 말 때가 특히 중요한데, 중간에 쓸데없는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바짝 말아야 한다. 잘 말고 나면 이게 정말 신문지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공예 재료가 된다. 이 재료를 썰 듯이 잘라내고 모아 붙여, 미니어처 의자며 식탁 같은 인형 가구들을 만들곤 했다.
두 시간 동안 신문지를 말고 썰고 이어 붙이다 보면 손을 깨끗이 씻어도 손에선 늘 신문지 냄새가 났다. 비누로 빡빡 문질러 닦으면 금방 없어졌겠지만, 얼른 하교 해서 집에 갈 생각에 부풀어 손을 제대로 씻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토요일에 출근하던 부장님의 점심이 해장국이었다면, 당시 나의 토요일 점심 특식은 단연 비빔국수였다. 커다란 양푼 속에 국수를 담아 양념장과 참깨를 듬뿍 넣어 비비고, 그 위에 삶은 계란 하나를 반 잘라 얹어 낸 엄마의 비빔국수는 토요일 점심의 단골 메뉴였다. 신발 주머니를 앞뒤로 휘두르며 집에 들어가면 이미 하교한 오빠가 먼저 와서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있었다. 미리 삶아 둔 소면을 다시 양푼에 넣고 비빔장에 비벼 내어 엄마와 나, 할머니가 오순도순 앉아서 먹었고 회사가 집과 5분 정도 거리였던 아빠도 느지막이 와서 함께 먹었다. 저녁을 다 같이 먹는 날은 꽤 있었어도 점심을 가족 모두 함께 먹는 날은 일주일 중 토요일이 거의 유일했다. 일요일마다 온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의 초등부 예배와 일반부 예배가 시간이 달랐던 터라, 일요일 점심은 오히려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만든 비빔국수의 특징은 양념장은 늘 같았어도 그날 그날 김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김치를 손톱만 한 크기로 듬뿍 썰어 넣었기 때문에, 신김치를 넣은 날엔 비빔국수도 따라 시어졌고 열무김치를 넣은 날엔 시원한 맛이 배가되었다. 늘 한결같은 맛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 지, 나는 아직도 엄마의 비빔국수만큼은 아무리 도전해봐도 따라 하기가 힘들다. 고추장 탓인가 싶어서 고추장도 얻어갔지만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그러면서도 톡 쏘듯 매콤한 그 맛이 잘 나지 않았다. 엄마한테 요령이 따로 있는 지 물으니 "국수는 딴 사람이 삶아줘야 맛있는 거야." 한다. 아, 그래서 라면도 내가 끓인 것보다 남이 끓인 게 더 맛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