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도시락

05. 튀김 주먹밥

by 갱그리

회사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에서 초등학생의 학부모 되기란 정말 만만치 않은 과제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그렇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학부모도 학부모들끼리 모여 정보를 공유해야 뒤처지지 않고, 점심 배식이며 청소며 부모들이 돌아가며 해야 하는 잡무들도 늘 쌓여 있다. 그런 데다가 학교 운동회니 소풍이니 행사가 생기면 사전에 모여 소품을 만들거나 단체복을 맞추는 등의 일들도 학부모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저 소풍이라고 하면, 늘 엄마의 소풍 도시락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소풍 때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주로 싸 왔지만, 우리 집의 소풍 도시락 메뉴는 언제나 튀김 주먹밥이었다. 볶은 야채와 갓 지어 따뜻한 밥을 주먹 반개 크기로 뭉쳐 계란옷과 튀김가루를 입히고 튀겨 낸 튀김 주먹밥은 소풍 도시락으로 먹는 것보다 사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몰래 몰래 하나씩 집어먹는 것이 훨씬 맛있었다. 갓 튀겨낸 때문도 있지만, 대나무 소쿠리에 한 가득 담겨져 나오는 튀김 주먹밥이 그렇게 풍요로워 보일 수 없었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가 회사에 다니는 것이 간혹 서러웠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린 폭우에,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모두 교문에 와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거기 없었다. 오지 못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문을 피해 후문으로 달음박질 쳐 집으로 뛰쳐 내려갔다. 무진 비를 맞으면서, 엉엉 울면서 내려간 집의 식탁 위엔 뜻밖에 엄마의 손편지가 있었다. "냄비에 찐 감자 있으니 냉장고에서 김치랑 꺼내 먹어. 사랑해" 비에 흠뻑 젖은 몸도, 서러워진 마음도 보슬보슬한 찐 감자 한 입에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몇몇 아이들의 엄마는 소풍 때마다 다른 엄마들과 무리를 지어 따라왔다. 우리 엄마는 올 때도 있었고, 못 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오든 않든, 내 도시락은 언제나 인기 만점이었다. 자신이 싸온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내 도시락 뚜껑에 얹으며 내 튀김주먹밥을 하나만 먹어보자고 하는 아이들이 늘 줄을 이었다. 그럴 때마다 으쓱한 마음에 나는 소풍이 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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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지나서야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회사를 다니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엄마는 하교 후 배고플 아이들을 위해 감자까지 쪄 놓고 출근했던 것이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폭우에 그날 엄마는 어디서 비를 피했을까. 내 소풍에 따라오지 못 했던 엄마는, 김밥이나 유부초밥보다도 훨씬 손이 많이 가는 튀김 주먹밥을 튀겨내며 얼마나 고단했을까. 내가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엄마가 되려는 시점에야 보게 된다. 나는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은 없지만, 일단 튀김 주먹밥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 한 걸음을 떼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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